24일부터 시작된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두번째 중국방문으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시위 이후 숨가쁘게 전개된 극동지역 관계 각국 간의 정상외교가 한바퀴를 돌았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은 냉전후 유일 초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에 대해 양대국이 공동의 견제세력으로 손을 잡았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21세기 동아시아지역 안보질서가 미·일·중·러의 다극 체제로 균형을 잡아 나가리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또 한·미·일 공조의 틀 안에 안주해 온 우리 외교가 냉전시대의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신축성을 갖춤으로써 변혁의 시대에 대처해야 할 때임을 실감하게 한다.
러시아는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 압력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아태지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한 강대국으로서의 위상 회복을 모색해 왔다. 시베리아 개발과 무기수출시장 개척을 위해서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지역은 매력적이다.
한편으로 중국은 대만문제 인권문제 미·일동맹으로 압박해 오는 미국과 맞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힘을 보태 줄 파트너가 절실하게 필요한 처지다. 21세기 안보동맹을 선언한 미·일 정상회담 직후의 중·러 정상회담은 이런 점에서 서로의 이해가 합치한다. 25일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국제사회에 현존하는 패권주의에 반대」하며,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고 밝힌 것은 이같은 양국의 합치된 이해를 집약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공동성명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다만 중국 외교부장의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양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평화유지를 위한 어떤 제안도 적극 검토할 것」이지만 「4자회담에 대해서는 깊이 논의하지 않았다」는 설명으로 정리하고 넘어갔다.
러시아는 한반도 4자회담에서 제외된데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불만을 표시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 수교한 이후 다방면으로 협력했으나 기대했던 경제협력도 만족할 만한 것이 없고 외교적으로도 소외당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에서 이런 러시아의 섭섭한 감정이 4자회담에 대한 태도를 유보하는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우리와 러시아의 관계는 평화회담 참여 여부로 금이 가게 내버려 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냉전종식후 러시아는 실제로 우리의 대북외교에 적지않은 도움을 주어 왔다. 어렵게 쌓아 온 양국간의 우의가 손상되지 않도록 동아시아로 돌아온 러시아의 아쉬움을 이해하고 협력의 폭을 넓히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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