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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회 정치인들에게/송호근 서울대교수·사회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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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회 정치인들에게/송호근 서울대교수·사회학(한국논단)

입력
1996.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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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대과없이 막을 내렸다. 각 당에서는 대차대조표를 만드느라 경황이 없는 모양이다. 국민들의 결단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사뭇 숙연한 공식 표명 뒤에서 각 당은 되도록 선거결과를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 안달이다. 느긋함, 초조함, 안도감, 허탈감이 교차되면서 향후 구도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누가 그랬듯이, 국민들은 어느 정당도 안심할 수 없는 「절묘한」 분할구도를 선물하였다. 여소야대인 듯도 싶고 여대야소인 듯도 한, 말하자면 「견제와 균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짜임새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들의 선택은 현명하였다고 생각한다. 개혁정부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독주를 방지하려는 국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다. 지역주의가 수도권에서 한 풀 꺾인 것도 다행스럽고,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숫자의 정치신인이 대거 등장한 것도, 「20당 15낙」의 위협 속에서 선거법을 지키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던 것도 모두 다행스러운 일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이번 선거에서 3당지도자들은 모두 승리하였다. 우선, YS는 전격적 개혁정치의 후유증 때문에 머뭇거리던 개혁연합을 다시 정비하고 내부 동질성을 높여 3당합당의 짐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DJ는 의석수가 확대된 본당을 되찾아 정계은퇴약속에 따라다녔던 꼬리표를 떼고 대선교두보를 다졌으며, JP 역시 TK의 상처를 달램으로써 분열된 전통 여권정서를 규합하여 지지기반을 넓혔다. 그런데, 3당 간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 없이는 향후 정국의 안정과 민주정치의 발전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최후의 승자는 국민일 것이다. 2000년을 준비하는 마지막 4년의 한국정치는 거대 여당의 독주나 주눅든 야당의 거리집회 따위를 먼 기억속에 던져버리고 「협력과 화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준엄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이제 2000년의 선진정치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 있다.

무릇 정당이란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며, 정치인은 권력행사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정치인이 존재한다. 정치를 「위하여」 사는 사람과 정치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이 그것이다. 1919년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한 직후 베버는 뮌헨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정치인의 자질과 본분에 대한 의미심장한 금언을 남겼다. 정치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은 주소득원을 정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리사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은 책임윤리가 부족하여 헌신적 정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의 정당은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로 구성되지만 관직분배로부터 나오는 이권을 챙기거나 관직 자체를 좇는 엽관정당이 될 위험이 많다. 그렇다고 명망가들끼리 한가롭게 잡담이나 나누는 정당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데에 현대정치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그래서 베버는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의 자질을 제시한다. 열정, 책임성, 균형감각이 그것이다. 대의를 위하여 헌신할 것, 말과 행동에 공적 책임을 지는 것을 행동의 안내자로 삼을 것,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간과 사물에 대하여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것을 명하였다. 특히 「객관적 거리의 상실」은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인 죄과가 된다고 경고하였다. 쏠리지 말고, 도당을 이루지 않으며, 사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정치를 예술로 만드는 최선의 길이다. 민주주의적 이상을 꽃피우려던 독일정치가 사분오열된 정당과 부업으로 정치를 행하는 명망가들의 행태로 좌초되기 직전 베버가 당부한 정치인의 금언이다.

○「발전개혁」지향

최근의 유럽정치는 우파자유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1차대전이후 70여년 지속된 개혁정치의 후유증을 치유하면서 혁신의 새로운 통로를 엿보는 중이다. 겨우 3년 계속된 개혁에 우리는 쉴 틈이 없으며 쉴 자격도 없다. 총선을 통하여 국민의 의중이 개혁 쪽에 실려 있음이 확인된 만큼 새 의회에 거는 기대도 더불어 커진다. 그동안 동분서주하였던 「민주화개혁」을 새롭게 정비하고 「발전개혁」을 향한 걸음을 재촉할 일이다. 내가 행사한 주권이 3당지도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에 그쳐서는 급기야 그것은 「종이돌(Paper Stone)」이 될 뿐이다. 투표가 종이돌이 되면, 민의는 단지 수적 의미로만 반영된다.

바이마르의 좌절의 대가를 이 땅에서 반복하지 않고 총선의 민의를 발전개혁으로 수렴하려면 베버가 당부한 정치인의 자질을 철저히 갖추어 나가기를 새 의회에 모인 정치적 직업인들에게 재삼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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