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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연 반드시 김정일 검열”(평양서 서울까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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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연 반드시 김정일 검열”(평양서 서울까지:상)

입력
1996.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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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27살까지 결혼말라” 교시등 각별 관심/“신분상승·해외나들이” 노동자들 예술인 선호/북선 연습때도 긴장감… 남 자유스러움에 놀라『북한에서 예술인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각종 특혜 뿐 아니라 고위층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신분상승의 가능성도 큽니다. 입당서열도 높고 사회적 인식도 좋은 편입니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다는 점도 크게 선호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일반노동자층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예술인을 선호합니다. 자녀를 예술전문학교나 음악전문유치원 등에 입학시키기 위해 당간부에게 웃돈을 주거나 공작을 펴는 부모도 많습니다. 그러나 출세걱정이 없는 최고위층 자제가 예술인을 지망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출신 신영희씨(34)는 북한 최고 예술단에 몸담으면서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최상류층 여성엘리트출신인 신씨가 「자유세계에로의 탈출」을 결심한 데에는 철저히 통제하고 제한되는 북한의 예술정책에 대해 느낀 염증이 주원인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될 이들에게 획일적인 북한사회는 질곡 그차체였다.

『만수대예술단이 중앙당 선전부 직속기관이던 80년대에는 많은 특혜가 주어졌습니다. 단원은 중앙당간부 수준의 넉넉한 생활을 했고 가족들에게까지 부식물이 별도로 지급됐습니다. 일반인과는 격리생활을 했으나 어쩌다 예술단원이 거리로 나서면 누구나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습니다. 예술단원은 철따라 지급되는 세련된 단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었죠』

예술단이 되자면 예술적 소질 뿐 아니라 출신성분과 잘생긴 외모도 선발조건이 된다. 만수대예술단에 발탁되면 우선 외부인과의 접촉이 불가능해진다. 단원이 되면 평양 만수대예술극장 근처에 마련된 합숙소에서 합숙생활을 하면서 상오 8시부터 하오 9시30분까지 강도높은 연습에 매달려야 한다. 만수대예술단은 최고의 지위에 어울리게 국가행사나 외국 국가수뇌를 위한 특별공연에만 나서고 일반인공연은 일절 하지 않는다. 김정일 등 최고위층을 접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김정일이 연습실을 방문해 「너 몇 살이니」하고 말을 건넨 적도 있었어요. 일부 예술단원들은 김정일과 개별적인 친분을 갖기도 합니다. 고위층과 접촉이 잦기 때문에 자연히 당간부의 자제와 맺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 서기실로 발탁돼 간 고영희나 당서열 2위였던 오진우의 며느리도 만수대예술단 출신입니다』

김정일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각별나다. 이같은 관심은 잦은 교시하달에서 나타난다. 김정일이 『무용가는 27세까지 결혼생활을 하지 말라』는 교시를 내린 뒤 예술단 무용조 여성단원의 결혼연령이 27세로 결정됐다. 80년대 중반 이후 예술단에 대한 당의 통제가 다소 느슨해지면서 결혼연령원칙에도 융통성이 생겼다.

신씨가 86년 최세웅씨(34)와 결혼했을때 26세였다.

『김정일이 우리 무용조의 키춤을 보고 「어깨춤이 너무 세다」고 지적하자 무용조 전원의 입당서열이 미루어진 적도 있습니다』

김정일이 예술창작에 직접 간여하는 수단은 이른바 「검열공연」이다. 새로운 형태의 예술공연이나 창작품은 일단 그의 검열에서 합격판정을 받아야 한다.

그의 지시 한마디에 공연내용이 변경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고예술단인 만수대예술단은 새로운 공연이 아니더라도 큰 공연에 앞서 반드시 김정일의 「검열」을 거쳐야 한다.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단원들도 엄청난 긴장과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대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공연 후 「총화」시간에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비판이 쏟아질 때는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 일일이 지적받습니다. 이 때문에 단원들간에 사감(사감)이 쌓이게 마련이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일은 별로 없지요. 공연에서 실수가 크면 일정기간 예술단에서 쫓겨나 생산조직에서 무임으로 노역봉사하는 벌칙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혁명화」 작업이라고 불립니다』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공연에 나가는 경우도 자주 있다. 신씨는 83년과 85년 두차례 중국과 구소련으로 해외순회공연에 나섰다. 해외공연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전액 김정 일에 대한 충성자금으로 쓰인다.

『80년대 중반 이후에 예술에 집중되던 당의 관심이 느슨해지자 소위 「예술」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경음악단 등 현대적 분위기의 예술단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니스커트, 광택이 나는 무대복등 예전에는 「수정주의적」이라고 비판받던 의상이 거리낌없이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공연내용도 무척 달라졌습니다. 「사상」대신 「생활」을 내용으로 한 노래가 많이 나왔고 또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북한에서는 공공연히 「예술보다 과학」 이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예술단원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예술인에 대한 처우는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경음악단 등 김정일의 기쁨조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예술단원은 여전히 최고대우를 보장받지만 일반 예술단원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무용연습이 중노동같은 큰 부담입니다. 무용연습을 할 때에는 무대 위 스텝을 밟는 지점마다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위치를 지정해줍니다. 스텝을 밟거나 다른 단원들과 줄을 맞추는 데 단 1㎜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연습시간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반면 남한에서는 연습이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더군요. 손놀림이나 발놀림도 자유롭고 장단과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한 무용수의 특성을 존중하더라구요. 요약하면 남한은 예술로서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반면 북한은 공연작품의 사상성과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신씨는 귀순하자마자 서울 시립가무단의 뮤지컬공연 「시집가는 날」에 맹진사의 딸 「갑분이」역을 맡아 열연했다. 공연중 여실히 느낀 남북한 예술공연의 차이를 조목조목 말하는 신씨의 얼굴에는 자유를 찾은 안도와 반가움이 짙게 배어있다.<특별취재반 김병찬 정치2부기자·김관명 사회1부기자 김경화·사회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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