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가정 파괴범」이라는 말(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가정 파괴범」이라는 말(장명수 칼럼)

입력
1996.04.24 00:00
0 0

강도와 강간을 일삼고 살인까지 저질러 온 「가정파괴범」에게 사형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최근 보도됐는데, 그날 한 젊은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격렬한 주장들이 쏟아졌다.『그 흉악범을 사형에 처하여 경종을 울리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가정파괴범」이란 말을 사형에 처하는 일이에요. 가정파괴범이란 말은 성폭력 그 자체보다 더 흉악무도한 뜻을 담고 있는데, 법조나 언론에서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 말은 「결손가정」이란 말처럼 편견을 조장하고 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다고 해서 결손가정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옳지 않아요. 편부가정, 편모가정이라는 정확한 말이 있는데, 왜 결손이라는 표현을 씁니까. 가정파괴범보다는 강간범이 옳은 표현이지요』

『세상에 남편이 얼마나 못났으면 강간당한 아내를 외면합니까. 성폭력의 피해자인 아내를 남편이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편과 어떻게 일생을 살겠습니까. 자기앞에서 아내가 강도에게 강간당하는 것을 보고 그 악몽을 잊지못해 결국 가정이 깨졌다는 식의 이야기가 흔히 나도는데, 그런 남편에게 일제히 분개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무거운데, 어떻게 심신의 상처를 입은 아내를 버립니까』

『요즘에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를 붙들어서 가정을 지키려는 남편들이 적지 않다고 해요. 많은 아내들이 바람난 남편을 받아들였 듯이 남편들도 아내의 바람을 참아넘기려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재산이나 체면, 또는 아이들 때문에 이혼만은 피하자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요. 그러나 아내의 외도가 절대로 용납안되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외도에 비하면 강간이란 불의의 사고인데, 남편들이 더 너그러워져야지요』

『성폭력을 폭력이상의 것으로 부풀리고 은연중에 불행을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를 바꿔야 해요.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중에는 인격이 파괴될 만큼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고, 또 앞서 언급한 편모·편부 가정중에도 어려운 가정이 많겠지요. 그러나 미리 「가정파괴」니 「결손」이니 하는 도장을 팍 찍어서는 안되지요』

특히 법조나 언론에서 「가정파괴범」이란 말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사실 내가 이런 칼럼을 쓴 것은 지난 십여년간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왜 가정파괴범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는지, 우리사회의 편견과 무신경에 새삼 실망하게 된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