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결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다수의 정계관측통이 결과에 대한 예측에 철저히 실패하였다는 사실이다. 선거 전날까지 대다수의 「전문가」는 신한국당의 참패를 점쳤다. 여당의 몫이 120석 수준에 그칠 것이며 정치판은 총선 직후부터 불안한 「헤쳐 모이기」의 게임에 휘말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여당참패론은 신한국당이 색깔론을 제기한 자민련에 밀리고 「장풍」을 일으킨 국민회의에 치여 이미 보수와 개혁성향의 지지기반을 모두 잠식당한 상태라는 진단에 근거하였다.그러나 그러한 예측은 빗나갔다. 자민련이 전문성과 신선함을 다같이 겸비한 후보의 공천에 실패하고 「북풍」이 안정심리를 자극할 때 강원과 경북은 이미 신한국당에 기울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김대중총재의 정계복귀로 산산조각난 상황하에서 본래 여당기질이 강한 인천과 경기가 강렬한 야당바람에 휘말릴 것이라고 진단한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인천과 경기에서 야권은 서너 갈래로 찢어져 신한국당과 경쟁하는 불리한 처지였다.
○「북풍」 과 「강풍」
그러나 예측을 빗나가게 한 최대의 승부처는 역시 서울이었다. 강원이나 경기지역과는 달리 서울에서는 안정심리를 부채질하는 북풍이 기세를 잃고 야당에 유리한 장풍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어느 면에서 보나 신한국당의 승리였다. 여당은 총선사상 처음 서울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였고 국민회의는 당지휘부에 포진한 서울출신의 중진의원이 신한국당의 정치신인에 밀려 대거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다.
서울에서 이변이 일어난 까닭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여당 승리의 일등공신은 역시 야당수뇌부였다.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선거전략은 여당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야당 자신의 취약점을 서울시민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모순적인 것이었다.
상당수의 서울시민은 신한국당이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자민련과 국민회의 역시 이념적 색깔과 비리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일한 잣대로 재보면 신한국당의 총재가 「작은 흠은 많지만 큰 흠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개혁정치의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반신한국당 정서가 친국민회의나 친자민련 여론으로 연결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자민련과 국민회의는 자신의 취약점을 노출시켜버릴 무기로 신한국당을 공략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개발독재시대의 주역이었던 자민련의 수뇌부가 색깔론을 구사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러웠고 지난 가을 정치자금수수의 의혹에 휘말렸던 국민회의의 지휘부가 대선자금청문회를 약속한다는 것이 어딘지 어색하였다.
게다가 야당이 서울에서 싸워야 할 상대는 임기 후반을 맞은 김영삼대통령이 아니라 신한국당의 간판스타로 막 부상한 이회창전총리와 박찬종전의원이었다. 그러나 자민련과 국민회의는 이러한 상황변화에 무감각하였다. 새로운 상대에 맞서 「말」을 갈아타야 할 때 야당은 기존의 수뇌부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건 것이었다. 야당이 서울에서 참패한 것은 인물경쟁에서 처지고 미래에 대한 비전의 제시에 실패한 결과였다.
지난 지방선거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아태재단의 김대중이사장은 뒷전에 물러선채 조순전부총리라는 개성이 강한 새로운 「상품」을 민주당의 서울시장후보로 내세웠다. 반면에 민자당의 김영삼대통령은 정치의 일선에서 북한 원조등의 선거전략을 손수 총기획하면서 정원식전총리라는 「무난한」 인물로 야당바람에 대처하였다. 결과는 민자당의 참패였다. 상당수 서울시민의 일차적 관심사는 「안정」이 아니었다. 서울이 원한 것은 대중적 카리스마를 가진 세 정치인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과거와 다른 미래를 열 차세대 주자의 등장이었다. 민자당보다 민주당이 그러한 열망을 더 충족시켜 주었다는 것을 지방선거의 결과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세대교체의 열망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여와 야는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김영삼대통령은 후진양성에 임하는 후견인으로서 후방에 물러서 있었고 김대중총재는 전국의 유세장을 누비면서 「차기」에 나섰다. 여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교훈을 얻고 선거전략을 대폭 수정할 때 국민회의는 지난해 승리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채 총재를 정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서울은 그러한 정치판에 지난 지방선거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응수하였다.
상당수의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은 참신한 얼굴과 새로운 비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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