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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를 왜 지지했나(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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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를 왜 지지했나(장명수 칼럼)

입력
1996.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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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최악의 오보, 최대의 망신, 졸렬무쌍한 깜짝 쇼로 기록된 각방송의 합동여론조사 결과 보도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각방송과 여론조사기관들에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조사기관들은 불성실하고 미숙한 조사로 신뢰하기 힘든 자료를 내놓았고, 각방송들은 그 자료를 근거없이 맹신하여 확정적 단정적으로 보도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직업적으로 뉴스를 다루고, 여론을 조사하는 사람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실수였다.유권자들도 차츰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정직하게 밝히지 않기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가 혼선을 빚고, 여론의 활성화와 정치발전에 바람직한 기여를 못한다는 비판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이라든가, 누구를 찍었다고 밝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친척 동창 동료 이웃등 몇사람이 모이면 으레 정치이야기를 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털어놓는 편이지만, 누구를 찍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금기사항에 속하기까지 한다.

평소 그의 언행이 친여인가 친야인가, 정치지도자들중 누구에게 특히 비판적인가, 어느 지역 출신인가, 또는 어떤 계층인가에 따라 대개 짐작은 할수있다. 그러나 선거철에 누구를 찍었느냐고 묻는 것은 입시철에 어떤 대학에 붙었느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눈치없는 짓이다.

왜 이런 풍토가 생겼을까. 오랜 독재아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것에 불안을 느끼던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아마 첫째 이유일 것이다. 오늘의 정치상황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더라도 몸조심 입조심으로 살아온 오랜 타성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유권자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선택을 떳떳하게 느끼지 못하고, 겉으로 주장하는 명분과 투표소안에서의 선택이 다를 때가 있고, 이리저리 얽혀있는 친분관계에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를 찍었다고 드러내기 싫은 경우가 많다. 지역감정 타파나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사람들이 개인의 이해득실과 감정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누구를 왜 선택했는지 떳떳하게 밝힐 뿐 아니라 이웃에게 그 선택을 전파할만큼 확신이 있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번 선거결과는 유권자들이 바로 선거의 주역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는데, 본심을 털어놓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주역의 임무를 다하기 어렵다. 각방송을 비판하던 우리는 이제 자신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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