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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이종 쓴잔 “대이변”/신진약진 다선고전 의외 당선·낙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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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이종 쓴잔 “대이변”/신진약진 다선고전 의외 당선·낙선자

입력
1996.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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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정치쇄신 메시지 뚜렷/박성범·이명박 정치중심지 드라마 연출/홍준표·이재오·추미애·김민석 등도 돌풍/정호용·이자헌·김영광 등 중진 뜻밖탈락4·11 총선의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는 정치신인들의 두각이다. 다선의원들이 적지않게 낙선하고 참신한 이미지의 새 인물들이 예상외로 많이 당선, 대이변을 창출했다. 낙선한 정치신인들도 상당수 당선권에 근접하는 석패를 했기때문에 신인돌풍은 대단한 기세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한마디로 정치권의 대폭 물갈이, 세대교체의 흐름으로 단정할 수 있다. 막연하게 정치적 명분으로 거론되던 정치쇄신이 유권자들의 표에 의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신인의 최대 드라마는 서울의 중심권인 중구와 종로에서 연출됐다. 신한국당의 박성범 이명박씨가 야당의 차세대주자인 정대철 이종찬후보를 거꾸러뜨린 것이다. 특히 「박성범씨의 승리, 정대철의원의 낙선」은 소설의 상상력을 넘는 대이변이었다. 박씨는 KBS의 앵커로 이름을 날렸지만 야당의 거목을 무너뜨리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사실 신한국당이 선거일을 사나흘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씨가 4∼5%를 앞선다는 결과를 얻었지만 반신반의했다. 당 지도부는 승리를 낙관하지 못하면서도 『혹시 이변을 만들 수 있다』며 실무진들에게 함구를 명했다. 이는 정대철후보측이 이를 알고 막판 반격을 시도하면 박빙의 우위가 역전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씨 승리에는 앵커출신인 부인 신은경씨의 내조가 큰 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신씨는 상가 등에서 설거지를 하는 헌신적인 선거운동을 했고 이 소문은 많은 주부들의 인심을 얻어냈다고 한다.

이명박의원이 종로에서만 4선을 한 이종찬의원을 이긴 결과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이명박의원은 누차 『재계에서 이룬 신화가 결코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겠다』고 호언했고 이를 증명해보인 셈이다. 그는 이종찬의원 진영의 사무국장 등 「종로토박이」들을 대거 영입, 선거전의 기세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당초에는 「30%의 호남표+이종찬 고정표」라는 구도로 국민회의의 우세가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노무현전의원이 부산에서 종로로 나서면서 야당표가 분산현상을 보여 이의원의 기적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는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신진들의 부각은 전반적으로 서울·수도권에서 두드러졌고 그들의 이미지는 대체로 깨끗하고 젊고 신선했다. 신한국당의 홍준표 맹형규 이신범 이재오 이우재, 국민회의의 추미애 김근태 유재건 김민석씨 등이 신인돌풍의 주역이었다. 홍준표씨는 「모레시계 검사」라는 별명에 힘입은 바 크며 김민석씨는 서울대 학생회장출신의 신선한 이미지에다 지난 14대때 석패했다는 사실때문에 주민들의 몰표를 얻었다는게 중론이다.

김근태씨는 양경자전의원에게 고전했으나 『재야의 대표적 인물은 뽑아줘야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당선권에 진입했다. 특기할 점은 재야단체인 전민련의 일원이었던 이재오 이우재씨는 여당의원으로, 김근태씨는 국민회의 의원으로, 이부영씨는 민주당의원으로 의정단상에 서게됐다는 것이다. 추미애씨는 서울에서 오랜만에 지역구 여성의원으로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외에 신한국당의 이성헌 김학원 백용호씨도 국민회의의 중량급인 김상현 조세형 장재식의원과 간발의 승부를 벌였다는 사실도 당락에 관계없이 정치권의 시선을 모았다. 인천 연수의 서한샘, 부평을의 이재명, 경기 과천·의왕의 안상수(이상 신한국), 안산갑의 김영환(국민회의), 평택을의 허남훈(자민련), 평택갑의 원유철(무소속)씨 등도 이변의 연출자였다. 특히 허남훈 원유철씨가 5선의 이자헌, 3선의 김영광의원을 공략했다는 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자헌 김영광의원 등은 공천과정에서부터 낮은 평점을 받았고 결국 당시의 평가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밖에 대구 서갑에서 무소속 백승홍후보가 2번의 낙선으로 동정표를 얻어 정호용의원을 이긴 경우도 이변중 하나였다.

○…이변이라는 표현만으로 부족한 정치신인들의 진출이 던지는 메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 야당의 공천헌금논란, 여권의 대선자금시비등은 정치불신을 증폭시켰으며 그 불신은 자연스럽게 기성정치인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은 정치권의 부패구조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켰으며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제고시켰다. 거물급 중진의원들, 차세대 주자들이 고전했다는 사실에서도 정치개혁, 정치쇄신의 기류가 뚜렷하게 부각되고있다.

민주당의 이부영 제정구 원혜영의원, 무소속의 홍사덕의원등 개혁이미지가 강한 현역들이 무난히 당선됐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적어도 향후 정치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청빈한 자세, 능력있는 전문성, 도덕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번 선거에서 묵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인들의 활약을 확대 해석하면, 오랜 기간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3김정치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또다른 신호로 볼 수 있다. 이회창 박찬종씨를 간판으로 내세운 신한국당이 서울에서 김대중총재의 국민회의를 눌렀으며 김종필총재의 자민련이 승부처로 삼았던 대구·경북에서 패배했다는 엄연한 결과는 큰 판의 변혁을 예고해주고있다. 즉 단순히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정치구도의 변화, 정치행태의 혁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세계의 시대사조는 변화와 혁신을 특징으로 하고있다. 기존 가치관은 변하고 있고 당연히 세계 각국의 정치에서도 새로운 정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두드러진다. 구체적으로 정치의 새로움은 다분히 반부패, 반권위주의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대세는 한국 정치에도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4·11 총선의 신진돌풍에서 증명된 셈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정치신인의 두각은 세계적 추세이자, 한국정치사에 중요한 변혁의 메시지를 던지고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이영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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