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공부하던 하이델베르크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며칠 보냈다. 전차가 다니던 구시가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고스란히 남기고 신시가를 만들어 서양도시의 변화상을 볼 수 있다. 오히려 구시가의 옛 건물을 보려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이 도시는 여전히 붐비고 있다. 세계의 각 민족들이 섞여 있겠지만 유독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등 동양인이 많이 눈에 띈다. 한국인은 선거철이라 다소 줄어들었다지만, 선거만 끝나면 급증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세계화란 우선 여행자유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많이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겁고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곳에서 참으로 심각한 얘기를 듣고 경험하면서 이것만은 꼭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비단 하이델베르크만이 아니라 유럽의 명소들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랑 상점들이 적지않게 있는데, 이들은 한국인만 상대하지 않고 현지 외국인도 상대하여 영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인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기가 어쩐지 조심스럽고 꺼려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매너가 없고 떠들고 거칠기 때문에 이들을 받아들였다가는 외국손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한국인은 값싼 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연히 관광회사와 함께 동업하며 이윤을 남겨 영업하는 한국인상점으로서는 남는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일본인관광객이 한 끼에 먹는 비용과 한국인 관광객의 식사비용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질서있게 행동하는데 한국인은 소란하고 조금만 식사가 늦게 나오면 야단을 쳐서 외국인들이 나가버린다고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원들이 왔는데, 아침에 밥을 주지 않는다고 관광회사의 부장급 가이드에게 빵을 집어던지고 뺨을 때리며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교민들도 “싫다”
한국인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해외에 나와서까지도 이렇게 오만방자해진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무교양이고 몰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한 민족끼리도 치고 박고 기피해야 한다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고 일부러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현지교민들의 대답인즉,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바르게 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질서지키기, 조용히 말하기, 친절하기등 예절교육을 잘 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많이 듣던 얘기지만 「집안에서 새던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는 말이 적중하는 서글픔을 느낀다.
방학이 되고 여행철이 오면 한국대학생들도 배낭여행을 많이 나오는데, 이들이 너무 이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독서를 하지 않고 나와 현지가이드들로부터 창피한 지적을 당하기도 한다. 예의없고 버릇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현지교민들도 이제는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한국인은 여행을 해도 여행기를 남기지 않으니 세월이 지나도 마냥 원점에서 출발하는 꼴이다. 서양인들은 여행을 하려면 우선 도서관에 가서 안내책자나 여행기들을 읽어 사전지식을 충분히 습득한 후에 출발하는 것이 상식이다. 서울에서 만나는 서양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좋아하기만 하지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출판물과 함께 공공도서관이 적어도 군이나 면 단위로 설립되어 국민교양이 높아져야 한다. 이것이 문화국가로 나아가는 길이고, 세계화정책이라는 것도 이러한 국내적 개선 없이는 아무리 떠들어봐야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이 쓴 낙서
한국인은 확실히 과거보다 잘 살고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가 문화적 교양과 연결되지 않고 경제적 편리와 향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고,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저질관광문화이다. 하이델베르크의 관광명소들에 가면 유난히 한국인들이 쓴 낙서들이 눈에 띄는데 제발 이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는 한 번 지나가는 기분에 그치지만 문화재는 영원히 남는 공유의 재산이다. 이런 몰상식하고 버릇없는 행동이 계속되면 앞으로 한국인 관광객은 사절한다는 간판이 나붙지 않을까 걱정하는 교민들도 만나보았다.
이런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의 정신적 불여유, 조급함 때문에 야기되는 난센스라고 생각된다.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Man reist nicht, anzukommen)』는 괴테의 말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제는 값싸게 며칠만에 몇 나라, 몇 도시를 일주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다. 관광은 돈을 넣는 만큼 질이 다르고 대우를 받는다. 막연한 눈요기관광은 삼가야 할 것이며, 역사 음악 미술 문학 등 구체적 관심과 연결된 관광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관의 건물만 보고 휙 둘러 나오는 관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우리 정부는 우리 관광문화가 아직도 이런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다각적이고도 심도있는 연구를 하여 정책을 수립해주기를 갈망한다.―하이델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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