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래에 우리가락의 맛 가미/「행진」 「그것만이 내세상」등 큰 인기그룹 「들국화」의 라이브 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된다. 절규하듯 쥐어짜는 리드 싱어 전인권의 독특한 목소리에 맞춰 모든 관객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우선 따라 부르기가 쉽기 때문이다. 마니아를 제외하고 헤비메탈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던 80년대 중반, 「들국화」는 우리 귀에 맞는 정감있는 노래로 국내에 헤비메탈 음악의 가능성을 열었다. 모든 노래에 우리 가락의 맛을 섞었던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한국적 헤비메탈」로 평가되기도 한다.
「들국화」는 전인권(43) 최성원(43) 허성욱(34)이라는 개성과 실력을 갖춘 세 음악인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전인권은 밤무대의 통기타 가수였다. 81년 후배의 소개로 피아노를 치는 허성욱을 만나 둘은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83년 신촌의 카페 모노에서 노래를 부르던 이들은 모노의 주인 최성원과 의기투합, 「들국화」라는 이름을 지었다.
전인권은 『진짜 우리 것을 찾자는 것이 세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것은 모든 음악적 가능성에 대한 열린 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85년 기타의 최구희(37)와 손진태(34), 드럼의 주찬권(43)을 가세시켜 6인조가 된 「들국화」는 그해 9월 「행진」을 타이틀로 한 첫앨범을 발표했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 (행진, 전인권 작사·작곡, 1985년) 나의>
고음에서 큰 호소력을 가진 전인권의 목소리와 그와는 대조적인 최성원 허성욱의 맑은 백보컬이 어우러진 「행진」은 「들국화」의 데뷔곡이자 대표작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일 뿐이야」 등 히트곡이 줄을 이으면서 이들은 유명인이 됐다. 방송보다는 콘서트에 주력하며 성인층에게까지 사랑을 받던 「들국화」는 87년 10월 전인권 허성욱이 대마초 흡연혐의로 구속되면서 해체됐다.
「들국화」는 재결성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93년 전인권이 이건태 민재현 동영욱 등 새멤버들로 2기 「들국화」 결성,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노래, 모든 관객이 함께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영원한 들국화 전인권의 이야기이다.<권오현 기자>권오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