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연주자 지성자씨는 짜임새있고 탄탄한 연주기량을 지녔기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이의 외양은 수더분한 여염의 부인같다. 이런 느낌 때문인가? 그이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기교를 부려 귀를 혹하게 하는 일 없이 참 정감있고 여유있게 흐르는구나」 싶어 즐겨 듣곤 했다.그런데 최근 그를 몇차례 만나 음악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음악 속에 흐르는 따스함의 원천이 바로 「이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좋은 가야금연주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시느냐』는 우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에는 내가 악기를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악기가 나를 얼마나 받아들여주는가, 내가 과연 악기를 어느 만큼 알고 있나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더군요. 그리고 안다는 것은 그저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푹 젖어들어야만 정말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아는 게 중요하지요』
이 생각이 바로 그이의 연주세계를 다듬어가는 「마음길」이었다. 악기를 「입 안의 혀」처럼 잘 써서 무엇이든 원하는 소리를 얻는 것을 연주의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악기에 다가서고 내가 악기에 젖어들어 감으로써 둘 사이의 좋은 관계가 생기고 이 좋은 관계에서 비로소 좋은 음악이 절로 빚어진다고 여긴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연주하는 음악도 마찬가지라 한다. 설령 그 두 사람이 독주자와 반주자 사이라 할지라도 독주자가 군림해버리면 곧 음악이 재미없어 지고 마니, 서로 음악속을 잘 알고 떠받쳐주거나 부추겨 주면서 연주할 때 비로소 「좋은 음악」이 된다는 얘기다.
「나 좀 알아달라」고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큰 목소리로 말하고 싶을 때, 지성자씨의 가야금연주를 들으며 그이가 더 좋은 연주를 위해 가야금에 다가섰던 그 마음의 걸음을 많은 사람과 공유했으면 좋겠다.<송혜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송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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