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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감시기능·정보질 향상이 과제(한국신문 100주년: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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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감시기능·정보질 향상이 과제(한국신문 100주년:하­2)

입력
1996.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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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 한국신문의 미래/총부수 세계8위… 심층보도로 경쟁력 갖출때/외지·DB 허용·통신사 직계약추진 등 개방 가속/기자선발도 언론대학원 통한 전문가양성 바람직한국신문은 세계화의 거센 파고를 맞고 있다. 국경을 넘어 전개되는 자본과 기술협력등 무한경쟁에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93년 「외국간행물 수입배포에 관한 법률」의 개정에 따라 외국정기간행물 수입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 95년부터 외국신문 수입은 완전 자유화한 실정이다. 신문의 소프트웨어인 데이터베이스 분야는 외국인의 100%투자가 가능하다. 로이터등 세계 4대 통신사도 연합통신을 거치지 않고 개별 신문사와 직접 계약할 수 있는 직접 정보서비스의 승인을 우리 정부에 요구하고 있어 다국적 언론기업에 의한 정보시장의 예속화현상도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우리 신문의 현위치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100년을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신문은 이미 양적 수준에서는 세계 상위권에 올라 있다.

95년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총발행부수는 약 1,500만부로 세계 8위 수준이다. 총발행부수는 미국과 일본이 95년 각각 6,200만부와 5,200만부를 기록,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위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행되는 구소련권으로 비공식집계이지만 총 1억3,000여만부, 1,000명당 480부를 발행하고 있다.

신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절대적 요인은 발행부수가 아니라 기사의 질적 수준.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영국의 타임스, 프랑스의 르몽드등 세계의 권위지로 평가되는 신문들은 심층보도와 균형있는 제작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뉴욕타임스등은 대통령의 직접 발언도 전문에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기사의 한 부분으로만 다룬다. 사건을 종합·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언론의 기능을 어떠한 권위보다도 우선하는 편집방침 때문이다.

이재경 이화여대교수(신문방송학과)는 『외국의 권위지는 1면광고는 최소화하는 대신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싣는데 우리 신문도 모든 승부를 기사의 질에 걸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선진국처럼 언론전문대학원을 설립, 기자지망생을 선발해 2년간 취재·편집등의 실무교육을 거쳐 현장에 투입하는 제도가 견습기자제도보다 전문성을 지닌 기자양성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언론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한국언론의 해외시장진출방안」은 신문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신문의 내적 역량 개발뿐만 아니라 영자신문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편다. 한글신문은 문자장벽, 배포속도등으로 인해 해외시장 개척에 시간이 소요되므로 영자신문 이용이 가장 현실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코리아타임스등 국내의 영자신문은 해외독자를 겨냥한 심층보도와 전문편집, 음성정보등 서비스의 다양화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대 기사제공이 영자신문의 새로운 영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심재철 고려대교수(신문방송학)는 『우리 신문은 상업적 논리에 치우쳐 부수와 사세경쟁에 매달리고 있다』며 『신문존립의 근본이유인 사회감시와 정보전달에 더욱 충실해져야만 세계화의 파고를 오히려 세계시장 진출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상연 기자>

◎제작·편집의 변천/90여년 전통의 납활자·원고지 대신 CTS·노트북·「보는신문」으로 발전

100년전 독립신문을 만들 때 사용됐던 정판직원에 의한 전통적 수작업은 5∼6년전까지도 조판방식의 중심을 이뤘다.

납활자에서 CTS (컴퓨터 제작시스템), 동판사진에서 스캐너를 이용한 컴퓨터입력으로, 다시 필름없는 디지털사진으로의 숨돌릴 새 없는 발전은 모두 90년대 들어서야 이뤄졌다. 원고지 대신 휴대용 랩탑컴퓨터로 세계 어느곳에서든지 기사작성과 전송을 할 수 있게 됐다. 신문은 종이로 만들어지지만 편집국에는 종이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CTS의 본격화로 전지면의 전송을 통한 전국동시인쇄도 가능하게 됐다. 91년 한국일보사가 처음 시도한 전국동시인쇄는 신문의 생명인 신속성은 물론 상품성까지 극대화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신문등 초창기 신문은 단순한 기사의 나열로 편집을 대신했다. 물론 이 때에도 주요기사와 화제성기사등의 배열을 달리하는 편집의 기본원칙은 존재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신문들은 일본신문으로부터 강조와 대비, 조화등의 편집원칙을 도입했다. 2면체제였던 50년대에 연재소설, 광고, 해외토픽등의 배열원칙이 확립됐다.

6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신문편집에서도 새 물결이 일어났다. 간결하고 힘있는 제목, 다양한 형태의 컷사용등 시대상황에 따라 개발된 편집방식은 지금까지 신문편집의 틀이 되고 있다.

4컷만화와 증권시세표가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이때이다. 70∼80년대에 신문은 현대적 감각의 레이아웃과 컬러화, 사진의 강조등을 토대로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의 변화를 준비했다.<조재우 기자>

◎북한신문 약사/당기관지 「노동신문」 51년 역사/70년대 「주체언론」표방… 3대 중앙지 대표적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신문은 없다. 신문은 정권유지와 혁명의 도구로서 의미를 지닐뿐이다. 따라서 북한신문은 노동당이나 정부 각 기관의 기관지로서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본격적인 북한신문은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에서 출발한다. 노동신문은 45년 11월1일 「정로」라는 이름으로 발행, 이듬해 8월 조선신민당기관지 「전진」을 흡수하면서 현재의 제호로 개칭됐다. 노동신문과 함께 3대 중앙지인 「민주조선」(정무원 발행)과 「노동청년」(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은 각각 46년 6월4일, 64년 5월17일 창간됐다. 65년 5월에는 북한 최초의 영자신문인 「평양시보」가 태어났다.

북한은 그러나 1928년 1월15일 창간된 「새날」을 북한신문의 효시로 꼽고 있다. 북한의 「정치사전」은 이 신문을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새날소년동맹의 기관지로서 창간 지도하신 우리나라 최초의 공산주의적 청소년신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1937년 5월3일 창간된 「서광」은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유격전술을 서술, 인민을 정치군사간부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선전매체였다. 1937년 12월27일 주간신문으로 태어난 「종소리」는 유격대원들의 생활기와 투쟁담을 주로 보도했다.

북한은 70년대들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벗어나 김일성 주체사상시대로 전환됐다. 언론 역시 이때부터 「주체의 언론」을 표방,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완성하기 위한 신문·보도·출판등 3대 언론혁명을 추진해왔다. 현재 북한에는 「노동신문」 「민주조선」 「노동청년」등 3대 중앙지 외에 각 도당위원회가 발행하는 지방지, 각 공장 기업소가 발행하는 공장신문, 대학신문, 해외홍보용 외국어신문, 정무원 각부에서 발행하는 전문신문등이 있다.<변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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