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이즈 성의식에 큰 영향인류의 역사는 질병, 그리고 질병에 대한 극복과 좌절의 역사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역사를 너무 편협하게 바라본다고 공박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개인적·집단적 고통 가운데 질병만큼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를 괴롭혀 온 것이 없으며, 인간의 노력 가운데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울인 것만큼 지속적인 활동을 찾기도 어렵다. 질병은 나라의 존망을 좌우한 적이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크게는 사상적, 정치·경제적으로 역사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끔찍한 전쟁들을 떠올리지만 질병이 인류에게 준 고통에 비하면 그야 말로 사소한 것이었으며, 전쟁의 비극은 그것과 동반되는 질병의 만연으로 더욱 증폭되곤 하였다. 역사상 의학은 그 자체의 발전을 지향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근본은 역시 각시대에 문제되는 질병의 극복이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테네 도시국가와 로마제국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많은 역사가들이 역병의 만연을 꼽고 있으며 14세기의 페스트(흑사병) 대유행은 유럽의 중세를 끝장낸 재앙이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를 연 하나의 동인이기도 했다.
질병은 인간의 사회적 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80년대부터의 에이즈 대유행은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암울한 전망을 낳고 있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부당한」핍박등 성과 관련한 인간의 의식과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질병의 역사라 하였지만 질병은 인류보다 몇백배나 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질병의 역사는 생물의 역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겪는 질병의 바탕에는 자연사적인 특성도 있지만 인류가 문명을 이룬 뒤 더 중요하게 작용해 온 것은 사회사적인 측면이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인류는 역사의 진전에 따라 계속 새로운 질병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황상익 서울대의대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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