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의 몇 권 안되는 책 가운데 134쪽 분량의 빛바랜 문화잡지 「신세대」를 가장 아낀다. 48년 5월 1일 서울타임스 출판국에서 발행한 정가 200원짜리 이 책을 지난해 여름 지휘자 림원식씨의 초청으로 옛 친구들을 만나러 내한한 미국 네바다음대교수인 일라이 헤이모위츠(Ely Haimowitz·76)씨에게서 받았다.줄리어드 출신으로 미군정 때 문교부 음악고문을 지낸 헤이모위츠씨는 귀국하기 전 가깝게 지내던 필자의 선친이 기념으로 준 「신세대」를 소중하게 보관해온 것이다. 48년 만에 태평양을 다시 건너온 책에는 선친의 영문사인이 선명해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사료적 가치도 있어 보인다. 「림거정 전」으로 유명한 홍명희 선생과의 특집대담기사에서는 해방공간의 특이한 문화적 기류가 느껴진다.
정지용(시인) 서항석(연출가)씨 등이 주고 받은 「독설과 유모어좌담회」는 해학과 익살 속에 톡톡 쏘는 맛이 있다. 대화 중에 일동이 소리내 웃으면 「소성」, 폭소를 터뜨리면 「대소」라고 적어놓은 점도 재미있다. 「부부예술가 가정을 찾아서」코너에는 운보 김기창·박래현화백의 예술과 인생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상대방의 얼굴을 서로 스케치한 캐리커처도 인상적이다.
운보와 필담을 나눈 글 쓴이는 『저 동해(어린아이)같은 웃음을 웃는 희랍조상의 균정된 장구를 가진,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만을 찾고 손수 실현하는 무해한 공민…』이라고 그를 묘사했다. 요즘 신문의 인물동정란격인 「문화소식」은 「김상훈씨(시인)의 시집 대렬 재판이 백우서림에서 나오게 됐다고 그 미더운 코에 희색이 표류」, 「박용구씨(음악평론가)는 저번 창간된 예원신보에 주필로 앉으시고」식이다. 2년 후 불어올 동족상잔의 불바람을 낌새조차 못 차린 비분강개조의 편집후기에는 「양단의 비극도 끝나 대단원이 머지않아 틀림없이 올 것」이라며 통일을 염원했다. 책만 펴들면 타임머신처럼 아득한 과거로 태워다 주는 「신세대」를 먼 훗날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선친의 사인옆에 이름 석자를 적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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