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외침」은 알래스카의 썰매 끄는 개 이야기다. 여러 개들의 모습을 심리묘사까지 해가며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 그중에는 평소 한없이 나른하게 보이다가도 일단 몸에 썰매가 달리면 온 힘을 내는 개들이 있다. 소위 「프로」들인 것이다.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고 한탄할 것까지는 없겠으나 그에 견줄만한 인간 프로도 그다지 흔치 않은 것 같다.예술에서 「프로」와 「비프로」를 전문분야를 살리는 직장을 가졌느냐 못가졌느냐로 따지는 것은 잘못이다. 누구든 생활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예술을 매개로 이뤄져야만 하는 법은 없다. 역사에 남은 대가들 중에는 평생 악보 한 번 제대로 출판해보지 못한 작곡가, 그림 몇 장 팔아보지 못한 화가들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에게 직업보장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술가들의 프로정신 결여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대학에서 우리처럼 많은 연주가를 배출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또 연주가가 되겠다고 외국을 찾는 유학생이 많기로 우리만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프로정신이 투철한 연주가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연주는 그렇다치고 청중에 인사하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공부는 많이 한 것 같은 데 쌓인 게 없다. 유학을 가더라도 기초가 안돼 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유학에 필요한 도구, 곧 어학조차 마련해 가지 않는 경우가 흔해 문화배경을 익힐 여유는 더군다나 없다. 그러니 연주자가 객석에 전달할 것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어제도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연주가들의 약력을 보면 다소 놀라운 점이 있다. 「수석졸업자」가 상당히 많은 것이다. 수석졸업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연주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 강조되는 풍토가 딱하다는 말이다. 자기가 불러야 할 곡을 검토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아끼지도 않고 무조건 연주횟수만 늘리는 성악가도 많다. 이름이 기억되면 출연료는 올라갈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곧 프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모든 「비프로」 연주가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관객은 빠른 속도로 프로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관객이 얼마나 무자비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연주자들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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