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20년 가신」인 장학로 전 청와대부속실장의 부정축재로 여야 공방전이 시끄럽다. 야당들의 집중공세에 시달리던 신한국당은 『검증받지 않은 인물들이 가신의 신분으로 부패사슬을 이루는 것은 3김시대의 악습이므로 3김시대를 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남의 가신들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는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지만 적반하장이 분명하다.가신이라는 봉건적 어휘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 말은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이유는 김영삼·김대중씨의 오랜 측근을 표현하기에 그 이상 적절한 말을 못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쓰이는 가신이란 말은 한국적인 정치풍토의 산물이라기보다 두 김씨가 헤쳐온 정치역정의 산물이다.
두 김씨는 혹독한 군사독재아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긴 세월을 감옥이나 자택에서 연금 상태로 살았다. 주변사람들은 협박이 두려워 대부분 떠났고, 정보기관에 매수되어 정보를 빼돌리거나 공작에 이용되는 배신자들도 나왔다. 그들은 철저하게 격리된채 의리를 지키는 소수의 측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절대로 메모를 하지않고 모든 스케줄을 머리속에서 관리하던 오랜 습관을 여당 대통령후보가 된후에 고쳤다는데, 메모조차 남길 수 없는 힘든 세월을 살았다는 증거다.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된후 과거 생사를 같이해온 측근들을 요직에 앉힌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능력을 검증받은 일이 없는 인물들이라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만 계속 요직에 앉으라는 법은 없고, 검증받은 인물들의 능력과 도덕성이 더 뛰어나다는 근거도 없다. 문제는 대통령이 측근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에 그는 자기자신과 소수의 심복밖에는 믿을수 없는 포위된 상황에서 싸웠으나, 이제 대통령이 된 그는 역사와 국민앞에 절대적으로 공명정대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가 여전히 자기자신과 측근만을 믿고, 측근에 대한 처사가 공명정대하지 않고, 세상사람들의 비판과 제안을 일단 의심하여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측근중에서 부정부패가 싹트는 것은 당연하다.
장학로 사건의 교훈은 가신 그룹의 등용을 제한해야 한다거나, 3김시대를 빨리 청산해야 한다거나, 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사람은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가기관은 공적인 기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신의 중용이 나쁜 것이 아니고, 가신이므로 공적인 기준과 감독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사건이 정치쟁점화하면서 본질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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