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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심리적 소질(조두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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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심리적 소질(조두영 칼럼)

입력
1996.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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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느 시기, 어느 집단에서건 구성원 6분의 5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두루뭉수리한 원칙을 내세워 대세를 따라가는 반면 나머지 6분의 1은 삐딱한 의견을 내세운다는 사회심리학적 연구조사가 있다. 그런데 얼마전 어느 외국 개미연구가가 비슷한 말을 하였다. 즉 부지런하다는 개미집단도 자세히 보면 단지 그 6분의 1이 진짜 일개미이고, 그 일개미를 솎아낸 나머지를 따로 놓고 관찰해보니 그중 6분의 1이 느닷없이 일을 열심히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과 개미는 모였다 하면 항상 그 6분의 1만이 총대를 메는 습성을 지닌 동물이다.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열린 음악회」의 폭발적 인기에서 보는 것처럼 박자에 맞춰 플라스틱 방망이까지 집단으로 휘두르는 「전국민 가수화」가 진행중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은 신문사가 앞장서서 「전국민 정치인화」캠페인을 벌여 지면을 대거 총선에 할애하고 있다. 나를 위시한 상당수 국민은 지치고 짜증나서 이제 국내 정치면은 잘 읽지 않는다. 총선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 무역, 대북정책과 국방, 그리고 군사기진작, 우방과의 선린유지 같은 문제가 지면에서 밀리고 있어 가슴이 미어진다.

○5가지 구비조건

정치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이들은 다음 다섯 가지 조건을 어려서부터 구비해온 분들인데, 언론이 무자격자까지 부추긴다는 감이다.

첫째 조건이다. 우선 선량소질의 소유자라면 그는 대다수 사람들이 참고 넘어갈 일 가운데 몇 가닥을 낚아채어 약간 비틀어 불평거리로 만든 다음, 이를 다시 한 단계 높여 국민의 공동현안화시키는 비상한 재주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소질은 젖먹이때 생긴다. 즉 젖 빨고 사랑받는 욕구가 다소 과하게 충족되어 재미가 든 경우와 아니면 반대로 욕구좌절에서 온 한을 품게 된 경우에 그 아이는 장차 잽싼 입놀림, 불평불만 토로, 시기심을 지닌 성격기반을 갖게 된다.

두번째 정계에 투신하여 기성정치인들에게 도전장을 들이댈 사람은 기본적으로 반항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성향은 그가 한 두살 시절 대소변 가리는 훈련을 받을 때 생기는데, 그가 어머니 눈에날 만큼 모범훈련생이 되지 못해서이다. 즉 준비가 덜 된 아이에게 무턱대고 아래를 깨끗이 하라고 윽박지르니 아이 마음속에서 자연 반감이 싹트며 이것이 뒤에 압제적인 기성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어린 시절 대소변 가리기의 깨끗지 못함이 더러는 장차 정치자금 수수의 지저분함으로 연결된다.

셋째 정치무대에 설 사람은 언변이 좋아야 하는데 이는 대략 두세살때 결정된다. 즉 보살펴주는 사람이 원래 말솜씨가 좋은데다 마침 그때 상대가 없어 입이 심심하던 차에 그 아이가 등장하여야 한다. 그래야 양육자는 쉴새없이 일러주고 자문자답까지 해주게 되고, 그래서 아이의 언어구사 잠재력이 자극받아 커진다. 이런 아이는 장차 정치인 말고도 변호사, 목사, 전도사, 교직자, 약장수가 될 터전을 마련한 셈이다.

넷째 정치인은 뱃심이 두둑해야 하는데, 그런 기틀은 서너살때 잡힌다. 이 시절 어린이들의 관심은 「고추」의 유무에 있다. 동네 여자아이들이 한 두살 아래 남자아이를 불러 오줌누는 구경을 하는 일이 흔하다. 남자아이는 호기있게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물줄기를 뿜어대고 여자아이들은 찬탄의 눈으로 기막혀 한다. 바로 여기에 재미들인 남자아이가 뒤에 어른이 되어 스스럼없이 남 앞에 나서게 된다. 요컨대 어려서 이웃 누나들을 잘 만나야 이런 「황금기회」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무릇 모든 정치지망생의 궁극목표는 대통령자리에 있는 즉슨, 그는 어려서 집안 대통령격인 아버지를 마음 속에서 이겨본 경험이 많아야 한다. 이런 시작은 대여섯 살부터인데, 어머니에게서 『너희 아버지가 좀 더 대가 세었으면!』이라는 암시를 은밀히 받아왔든가 아니면 실제로 아버지의 약할 때 모습을 여러 번 보고 자란 경력의 소유자라야 한다.

○냉수 들이켠 다음

이상 다섯 가지 조건을 완비한 분이라면 이번에 출사표를 던질만 하며, 다소 부족한 분은 심리구조상 행정가쪽이 차라리 낫다. 그리고 가짜 일개미인양 공연히 우왕좌왕하는 나머지 인생인 우리 대다수는 서둘러 냉수를 들이켠 다음 신문 총선관계 기사를 밀어내고 분수에 맞는 다른 기사나 읽었으면 한다. 언론과 정치의 구별, 언론인과 정치인의 구별이 오늘처럼 아쉬운 적이 없다.<서울대의대교수·정신과>

□약력

▲1937년 서울출생 ▲서울대의대졸 ▲미 뉴욕시립병원 정신과병동장 ▲한국정신분석학회 초대회장·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 ▲저서 「임상행동과학」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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