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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농경지와 쌀(천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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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농경지와 쌀(천자춘추)

입력
1996.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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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20분만 달리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논을 볼 수 있다. 94년 10월 뉴욕에서 돌아와 논 가운데 있는 창고를 빌려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일산은 농촌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했던 곳이다.버스가 2시간에 한번 다녀 여러가지 불편이 뒤따랐지만 항상 맑은 공기와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풍경이 내 고향 정읍을 떠올리게 했다. 오래 전 고향을 떠나와 일본, 미국, 유럽등 세계각국을 돌며 작업을 해왔던 나에게는 따뜻하고 아늑한 어머니의 품처럼 다가왔다. 특히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에 낼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주변풍경은 알게 모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신도시 건설물결이 밀어닥치면서 작업장주변은 급속도로 변했다. 하루에도 수십대의 덤프 트럭이 황토를 싣고와 기름진 논을 덮어나갔고 그 위로 고층아파트와 대규모 공장이 들어섰다. 이와 같은 일산풍경을 보면서 요즈음의 우리의 사회현상을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우리의 생활이 옛날에 비해 윤택해져 힘든 논농사를 짓지 않아도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돈이 많이 벌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쌀이 우리의 주식이고 보면 쌀은 우리의 국력이고 기간산업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상태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쌀을 경작할 논이 많이 줄어들 것이고 그 결과 식량사정이 나빠질 수도 있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미국은 쌀이 주식이 아닌데도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평야에 기름진 벼경작지를 조성하고 쌀을 생산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등지에 쌀을 강매하고 있는 것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쌀은 가장 무서운 무혈의 전쟁무기이기도 하다. 지금 북한이 식량사정으로 곤궁에 처해 있는 것도 좋은 예라 하겠다. 식량사정이 나빠지면 쌀생산국의 요구에 응해야 함은 물론 나라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농경지를 메워 다른 용도로 쓰는 일은 규제하고 있으며 일본인 스스로도 농토를 보호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시적인 개인의 이익이나 정책적 문제해결을 위해 기름진 우리의 농토를 줄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라 하겠다.<전수천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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