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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옷,파란 옷(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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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옷,파란 옷(장명수 칼럼)

입력
1996.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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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어머니가 입는 한복은 은연중에 색깔이 정해져 있는데, 신부어머니는 분홍색 신랑어머니는 파란색을 입는다. 그것은 전통과는 관련이 없고, 한복집에서 권하는대로 따르다보니 신풍속이 된것 같다.그런데 이 신풍속을 『신부 어머니는 분해서 분홍 옷을, 신랑어머니는 서슬이 시퍼래서 파란 옷을 입는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곱게 기른 딸을 보내는 것도 섭섭한데, 힘겹게 혼수를 마련해야 하고, 때로는 혼수가 적다는 불평까지 들어야 하니, 신부어머니는 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호화혼수에 대한 지탄이 그치지 않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이미 관습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지나쳐서 이것저것 너무 많이 해주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딸이 혼수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을까봐 무리하게 된다. 시댁에서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적인 명성이 있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 아들이 인기있는 전문직업인이라는 이유로 신부측에 과도한 혼수를 요구했다고 소문난 사람이 여러명 있다.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부모로부터 받는 일에 익숙해진 자녀들은 결혼을 「부모에게 왕창 받아내는 마지막 기회」쯤으로 인식하고, 모든것을 최고로 해달라고 졸라대기도 한다. 딸을 시집보낸 젊은 엄마들은 딸이 얄미워서 혼났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므로 실용적인 혼수를 하기로 딸과 단단히 약속했는데, 딸이 적은 혼수목록을 보니 기가 막혔어요. TV, 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 세탁기, 에어컨, 장롱등을 모두 가장 크고 비싼걸로 사달라는 거예요. 신접살림에 그렇게 큰것이 왜 필요하냐니까 한번 사면 십년은 쓸테니 커야 한대요. 간단하게 하자던 시댁식구들 선물도 자꾸만 비싼 품목으로 바꾸면서 선물때문에 기죽기 싫으니 좋은걸 사달라고 졸라요. 결혼 삼십년이 되는 부모의 살림살이보다 훨씬 좋은 걸 사달라는 딸이 그렇게 미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결혼식장에 가보면 분홍 옷을 입은 신부 어머니들은 대개 기운이 쑥 빠진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걸까. 파란 옷을 입은 신랑 어머니들은 신부 어머니보다는 기운차게 보인다. 앞으로 이십년쯤 흐른후 결혼적령기의 여자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신랑 어머니는 더이상 서슬이 시퍼럴 수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결혼풍습을 바꿔야 한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힘을 합쳐서 대대적인 운동을 벌여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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