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권 이양에 세계주민들 탈출… 공존거부민족들간의 해묵은 갈등이 내전이 종식된 보스니아의 평화정착에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구유고의 내전 당사자들은 18일 전쟁범죄자를 재판에 회부키로 합의했으나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는 이날 방화사태로 큰 피해를 냈다. 사라예보 관할권이 회교·크로아티아 연방에 완전 이양되기 하루전인 18일 전기가 끊긴 사라예보는 혼란에 빠졌다. 이날 하루동안 경찰학교 건물을 포함, 수십채의 가옥들이 불탔다. 철수를 앞둔 세르비아계 청년들이 회교계와 크로아티아계의 아파트는 물론 이주를 거부하던 세르비아인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수류탄을 마구 던졌다. 상점들이 털리고 최소한 3건의 강간사건도 발생했다.
사라예보를 그냥 넘겨줄 수 없다는 세르비아계의 증오가 도시를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다.
방화와 약탈은 회교·크로아티아계에 마지막으로 넘겨진 사라예보 교외의 그르바비차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지난 몇주간 차례로 관할권이 이양된 일리드자 등 4개 교외지역에서도 동시에 일어났다.
결국 19일 상오「내전의 수도」였던 사라예보에는 밤새 잦아들지 않은 불길속에서 폐허로 변한 건물들만 흉물스럽게 남았다.
사라예보 거주 세르비아인들은 이주하지 말 것을 권고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복에 대한 공포, 동족들의 압력 등으로 대부분 인근 세르비아계 관할지역으로 떠나버렸다. 세르비아 관영 SRNA 통신은 19일 사라예보에 거주하던 세르비아인중 1%도 되지 않는 약 200명의 세르비아인들만 남았다고 발표했다. 세르비아인 「소개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됐다는 말이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한 관계자는 이날 『사라예보는 평화를 되찾겠지만 내전이전의 다민족 도시가 아니라 공존을 거부한 이들에 의해 버려진 도시가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사라예보가 불타던 날 제네바에서는 내전당사국 지도자들이 그동안 골머리를 앓아온 전범처리 문제 등에 합의, 평화정착의 걸림돌을 일단 제거했다.
프라뇨 투지만 크로아티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 에주프 가니치 보스니아 대통령 대행 등은 전범 혐의자들을 유엔 전범재판소에 회부키로 합의하는 한편 난민귀환 및 이동의 자유를 전면보장키로 했다.
현재 내전 지도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다민족으로 구성되는 평화로운 보스니아 건설약속이 어느정도 실현될는지는 예측키 어려운 상태다. 「사라예보 방화사태」가 민족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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