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의식에다 지금도 자원 충분”전국 25개 국립대 총장들의 모임인 「전국 국립대학 총장협의회(회장 최한선 전남대총장)」는 지난달 서울대 선우중호총장이 불참한 가운데 모임을 갖고 서울대가 추진중인 서울대법에 대응해 국립대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서울대법이 제정될 경우 나머지 국립대학의 위상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는 공동의 위기의식을 강력하게 표출했다.
서울대를 제외한 다른 국공립대가 서울대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이 법이 서울대 특유의 「선민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만을 예외적으로, 특별히 취급하는 법률을 왜 만들어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두번째 이유는 서울대가 내세우는 「예산확보와 대학운영의 자율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논리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서울대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기에 충분한 물적자원을 확보하고 있고 대학운영의 자율화는 굳이 법적으로 보장해야할 성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학교육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서울대 공대가 지난해 외부 연구프로젝트 수주 또는 기업의 연구활동 지원금 등으로 받은 금액이 1,300억원에 이르고 있지만 제대로 투자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올해 입시에서도 수능성적 상위 1% 이내에 드는 학생 가운데 90%이상이 서울대를 지원했을 정도로 최상위권 학생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서울대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결코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기 때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박정태 기자>박정태>
◎서울대 현교육여건/1인당교육비 외국의 20%에도 미달/도서관장서 하버드의 13%… 실험시설 포항공대에도 뒤져
『학생수가 지나치게 많고 1인당 교육비가 외국 주요대학의 5분의1∼7분의1에 불과하다. 대학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의 주요대학을 평가한뒤 서울대에 내린 냉정한 평가다.
국내최고의 대학이라고 자처하는 서울대의 위상이 안팎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대학의 교육여건을 가늠케 하는 ▲예산규모 ▲교수 연구실적 ▲도서관·실험실습 시설 ▲연구비 수준 ▲국제화 수준 등에서 선진외국의 대학은 물론 국내 일부대학에도 뒤지고 있는게 서울대의 현주소다.
서울대 연구처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교수의 94년 1인당 발표논문은 평균 4.5편. 이중 학술회의나 기념논문집에 수록된 것을 제외한 순수 학술지 게재논문은 1.91편이고 해외학술지에는 1인당 0.46편만이 게재됐다. 미국의 경우 중상위 주립대교수들이 1인당 연간 2편 정도의 논문을 해외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망스런 수준이다.
국내대학 최고라는 서울대의 도서관 수준도 열악하다. 95년 대학평가에서 서울대 도서관은 명예롭지 않은 7위자리에 머물렀다. 농학 의학 법학 경영학등 4개분관을 포함, 94년말 현재 166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지만 해방전 경성제대 시절의 책이 20%에 가까운 32만권이나 된다. 미국 하버드대(1,300만권), 일본 도쿄(동경)대(700만권), 영국 옥스퍼드대(900만권)의 13∼24% 수준이다. 1인당 장서수도 56.5권으로 스탠퍼드의 8분의1, 홍콩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신생 포항공대(60권)에도 뒤지고 있다.
실험시설도 낙후됐다. 미국의 주요대학 이공계 학과의 평균 실험시설 규모가 5,000만∼1억달러인데 비해 서울대는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920만달러에 불과하다. 2,700만달러인 포항공대의 3분의1수준이다. 1인당 실험실습비도 포항공대의 23만4,000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19만 4,000원이다.
교수 1인당연구비도 국제수준에 훨씬 못미친다. 서울대의 교수1인당 연구비 3,400만원은 포항공대(8,600만원) 도쿄대(8,500만원) 스탠퍼드대(1억6,000만원) 미국 MIT대(2억8,000만원)에 비하면 너무 적다.<조철환 기자>조철환>
◎나는 이래서 반대한다/“법제정보다 자체개혁노력 선행돼야”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키워 나가겠다는 바람은 국내 어느 대학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대 역시 가장 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지고도 연구와 교육의 질적 수준에서는 세계 900위 수준이라는 자기반성에서 서울대학교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한 대학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법제도 측면에서만 이뤄져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서울대의 자체 개혁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동안 지적돼온 대학 운영상의 비효율적인 낭비 요인을 없애고 학생들의 수업열의나 교수들의 연구동기를 높이려는 시도가 이에 못지않게 절실하다.
더구나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서 서울대가 보여준 태도는 상당히 배타적인 것이었다.
이제까지 다른 대학들과 과연 얼마나 협조하려 했는 지에 대해서도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서울대가 법제정을 통해 특혜를 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지금의 서울대가 갖고 있는 자만과 안일을 과감히 떨쳐버리지 않는 한 서울대의 질적 수준은 향상되기 어려울 것이다.<권장희 기독윤리실천협의회정책실장>권장희>
◎“만성적 재원부족 사립대외면 안될말”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70% 가량이 사립대학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저변을 이끌어 온 사립대학들은 만성적인 재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에 매우 인색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학교법을 만들어 서울대에만 특혜성 재정지원을 베푸는 것은 교육법에 명시돼 있는 대학의 공정성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서울대법을 제안한 사람들은 2000년대 교육개방을 앞두고 우리나라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명문대학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국가적인 측면에서의 교육경쟁력은 특정대학을 지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전체대학의 수준을 올려놓고 자율경쟁을 통해 경쟁력이 길러지다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대학이 탄생할 수 있다. 대학의 3대정신은 자주성 자율성 공공성이다. 이를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각종 규제와 특혜를 철폐하고 대학간에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박애리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과정 수료>박애리>
◎반대기고/특권의식깔린 이기적발상/헌법보장 평등권 침해 위헌시비 소지/한정된 재원땐 타대엔 지원감소 의미
서울대가 다른 대학과 차별성을 두는, 총리 직속의 특별한 법적 지위를 확보하려 한다는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지금 봉건적인 조선왕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마치 서울대가 스스로를 성균관이라고 단정짓고 여타 대학은 그저 지방의 향교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서울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학들과 비교하면 감히 내세우기 힘든 위상이다. 그러다보니 서울대만이라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서울대학교법」제정론자들의 주장이다.
서울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다른 대학들도 공감하고 해결해야할 과제다. 그러나 그 처방이 너무나 반민주적이고 이기적이다. 지성세계야말로 민주적 합리성에 기초해야 하는데도 이 법은 「차별을 통한 정의」를 강변하고 있다.
더구나 서울대법은 헌법정신에도 저촉된다. 위헌시비가 일 소지도 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을 침해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원리인 기회균등에 어긋나고 서울대만의 독점적 특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서울시민이 내는 세금이나 특정한 법인 또는 단체가 내는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아니다. 다른 국립대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국립대일 뿐이다.
정부는 최근 교육재정의 국민총생산(GNP) 대비 확보율을 98년까지 5%선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재정은 GNP 대비 3%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대법 제정은 이처럼 열악한 교육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반하는 것이다. 한정된 재원이 전제된 상황에서 서울대가 그것을 일정 부분 선점하려는 것은 거꾸로 다른 대학들에 대한 지원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가 갖고 있는 우수성은 결코 서울대 고유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특유의 중앙지향적 사고방식과 다른 대학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정책적 배려에 힘입어 얻어진 당연한 결과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수십년에 걸친 인재배분의 모순이 구조적으로 굳어져 있다.
국제경쟁력이 있는 대학이 만들어지려면 국내에서 학문적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서는 이렇게 될 수 없다.
우수한 인재들이 여러 대학으로 나뉘어져야 건전한 경쟁이 이뤄지고 여러 학파도 나타날 것이다. 국내에서 다른 선수들과 제대로 경기조차 해보지 않은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릴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대가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국내의 다른 대학들과 동등한 조건 속에서 경쟁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것도 서울대가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학문적 경쟁력 확보의 전제조건이다.
모든 것을 독점하는 포식자는 생태계도 망치고 자신도 결국은 살 수 없게 된다.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다 같이 무럭무럭 자라는 숲에는 온갖 생물들이 자란다. 그러나 한 그루의 큰 나무만 홀로 선 벌판은 황무지로 변할 뿐 아니라 그 나무도 결국은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자신이 서려면 남을 먼저 서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서울대는 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또 지성인다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서울대법의 저변에는 보이지 않는 특권의식이 깔려 있다. 특권의식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이 나라의 장래를 떠맡을 수는 없다.<정해왕 부산대교수·철학과>정해왕>
□약력
▲38세
▲부산대 철학과
▲부산대 대학원 박사(동양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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