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장르간 호환가능성 새 장인위적으로 구분한 내용전개는 춤언어의 독창적인 영역을 침해한다. 「환상보행」을 놓고 이런 지적을 하는 이유는 양정수가 이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와 관련된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이다.
양정수는 여자 셋과 남자 셋을 부각시켰는데 두 여자와 한 남자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이 작품의 내용이라면 백치소녀와 메신저는 상상의 세계를 장식하는 배경들이다.
1장에서는 메신저가 신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물들의 성격을 부여하고 2장에서는 윤락가를 연상시키는 나름대로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이 환상은 3장에서 보인 절망의 강도와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제 몫을 하며 안개 속을 거니는 사랑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문제는 4장으로 앞서의 세 장면이 독자적으로 환상보행을 했던 것에 비해 모든 면에서 축소되는 분위기였다. 끝정리를 위해 춤의 맥을 끊은 격인데 『우리(관객)도 그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줄 안다』라는 항의도 나올 법하다. 사랑을 주제로 환상보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논리적이지 않을 때 더욱 실감이 난다는 사실은 「환상보행」의 장면들을 서로 교차시키는 상상으로 충분하다.
자칫 판에 박은 듯한 삼각관계로 비칠 장면들을 승화시킨 면에서는 양정수의 연출력이 돋보였고 특히 춤사위와 그 흐름이 적절하고 편안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출연진, 특히 군무진의 기량이 흡족하지는 못했다. 김희정과 박진수의 듀엣으로 이를 만회하기는 했지만 특정 대학교수에게 주어진 작업여건으로 미뤄 두기에는 그 열기가 아까웠다.
막이 오르면서부터 이 작품을 국립발레단에 준다면 좋을 것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는데 춤장르 상호간의 교류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현상이다. 아마도 「환상보행」이 만드는 환상적 분위기, 서정적인 움직임, 스펙터클한 재미가 발레로 공연되었으면 하고 느꼈던 원인인 것같다.
이번 작품은 한국문예진흥원이 제공하는 창작활성화 지원금으로 이뤄졌는데 우리 춤계에 장르간 호환의 가능성을 부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무는 충분히 했다고 보인다.<문애령 무용평론가>문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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