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의 독도문제, 중국 본토와 대만(타이완)의 긴장관계로 유럽언론에서도 극동에 관한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유럽에서 보면 중국 한국 일본은 아랍 아프리카보다 먼 그야말로 극동아시아이다. 세계가 지구가족화하고 상호의존성이 커짐에 따라 극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그렇지만 이런 일반론적·피상적 관찰을 넘어 실상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흔히 국제경쟁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역사를 통틀어 얼마나 자신들에 필요하고 흥미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유럽에서 아시아를 보는 눈도 중국 일본 한국에 대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럽, 적어도 필자가 머무르는 독일에서는 어느 하나를 막연하게 보지 않고 철저한 문헌과 증거에 의해 판단한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 대해서도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그것은 철저히 학문에 의해 뒷받침된다. 모든 정책결정이 일단 도서관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여행을 할 때도 도서관에 가서 미리 공부하고 떠나는 것이 이들의 상식이다. 필자가 있는 프라이부르크대학도서관은 독일에서도 이름난 도서관인데 70년대부터 나온 서양어로 된 중국관계책이 약 2,400권 일본관계책이 1,800여권인데 한국관계책은 400권이 채 못된다. 독일대학 가운데 일본학을 가르치는 곳이 21개 대학인데 한국학은 절반인 10개 대학에서만 가르친다. 독도문제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은 역사적으로 왜 엄연히 한국땅인지 설명해주는 책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한국 안에서는 자명한 것도 밖에 나오면 알려주는 문헌이 없고 반면에 일본은 너무 알려져 있다.
○한국빠진 서지실
어느 도서관에도 있는 서지실에는 지역별 인물별로 수많은 서지가 발간되어 연구자들을 안내하며 각종 지식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많은 서지들 가 운데 한국에 관한 것을 찾으려니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중동 라틴아메리카 심지어 아프리카의 나라들에 관해서도 나온 서지가 한국에 관해서는 왜 못 나온 것 일까? 이래서야 도대체 어떻게 한국을 알 수 있겠는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공보처도 있지만 세계학계에 정말 한국을 연구할만한 매력을 주지 못했고 한국정부도 노력을 안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한국이 법치국가를 표방하며 법전을 갖추고 있지만 현행 헌법도 독일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 놀랍게도 평양에서 번역된 북한헌법은 이곳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둘째로 한국학자들은 자기 전공분야에서 국내에선 나름대로 업적을 내지만 외국어로 한국적인 것을 발표하거나 공동업적을 내는 데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일본학자들보다 개인능력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돌아가서는 업적을 내지 못한다고 이 곳 학계에는 알려져 있다. 그것이 국가수준과 문화역량을 말해준다. 한 나라의 학문수준은 사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외국인들도 읽을 수 있는 사전류를 한국에선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인명사전」조차 서양어로 된 것이 없으니 한국땅은 있어도 한국인은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학술 문화면으로는 오히려 황폐해져 은연중 다시 「은자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의 물질만능풍조가 국내적으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이렇게 격하시켜놓은 것이다. 심각히 말하면 한국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들인가 하는 얘기가 된다. 한국인은 자기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싫어하는 버릇이 강한데 이런 자기기만을 깨뜨리지 않으면 은둔의 장막은 걷히지 않을 것이다. 후손들을 생각하면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일원화안돼 혼란
물론 우리나라도 서양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분야별로 파견되어 자료를 모으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국가적으로 일원화하여 뒷받침되지 못하니 혼란상을 나타낸다. 독일의 통일정책을 배운다, 프랑스의 자치행정을 배운다고 공직자 검사 학자들이 저마다 건너와 자료를 달라고 돌아 다니니 이곳 담당자들은 이미 수십차례 가져간 자료를 또 달라고 하는 「이상한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을 기피하려 한다. 통일정책에 관한한 정부부처끼리도 왜 일원화하지 못하는지 부끄럽다. 공보처는 대통령홍보만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한국의 법 문화 역사등 각 분야를 외국어로 번역하여 제공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공부한 학자 교포2세를 적절히 활용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독도문제에 관해서도 단호히 대응해야 하지만 해외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한국을 바르게 알리는 노력이 없으면 감정적 대응으로만 비쳐지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폭넓은 문화정책 대외정책을 세워 「은자의 나라」에서 벗어나 세계국가들이 매력을 느끼고 연구하려는, 한국인 한국문화가 비쳐지는 열린 나라로 성숙하도록 기초를 놓아야 할것이다. ―프라이부르크에서<서울대교수·법사상사>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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