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비가열혈액제제의 AIDS발생 가능성 은폐/혈우병환자투여 방치… 400명 사망 1300명 피해/잇속에 눈먼 정부·학계·제약사에 경종간 나오토(관직인) 일 후생성장관은 최근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사죄를 드린다』며 비가열혈액제제로 인해 병에 걸린 「약해AIDS」 피해자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보건정책책임자로는 최초로 한 이같은 사과는 스러져가는 목숨을 붙잡고 꼬박 10년을 싸우며 기다렸던 피해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족했다. 원망과 회한의 세월 위에 승리의 기쁨이 아련히 겹쳤다.
그러나 피해당사자들의 복잡한 감회도 잠시, 이후 잇따라 드러난 「약해AIDS」의 숨겨진 진상은 충격과 함께 국가의 존재이유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후생성이 비가열혈액제제의 AIDS발생 가능성을 83년 6월에 이미 보고받고도 이를 애써 무시했던 증거자료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비가열제제를 수입판매한 제약회사중 최대업체인 일본녹십자사가 후생성에 제출한 허위보고서와는 달리 실제 출하정지, 제품회수에 늑장을 부린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달 27일의 중의원 예산위에서는 당시 후생장관이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교본용태랑)에게 일본녹십자사가 거액의 정치헌금을 했음도 밝혀졌다. 또 일녹십자사의 사장과 부사장등 요직을 후생성 간부출신이 독점했던 상황도 드러났다.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83년 후생성의 본격검토 당시 비가열제제의 위험성을 무시했던 의학계 권위자들과 업계와의 유착도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실은 정부와 학계, 제약업계의 내밀한 유착이 「미필적고의에 의한 대량살인」을 불렀다는 비난여론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에서 혈우병환자에 대한 비가열혈액제제의 사용이 AIDS감염원으로 지적된 것은 82년이었다. 이에 따라 83년 이후 미국에서는 비가열제제가 사실상 쓰이지 않았다.
일본도 83년 6월 후생성이 비가열제제의 위험성을 검토했으나 가열제제사용으로 전환한 것은 정작 2년후인 85년 7월이었다. 이후에도 비가열제제의 출하정지와 회수는 지연됐다. 그사이 미국에서 판로를 잃은 비가열제제가 대량으로 수입돼 일본의 혈우병 환자들에게 투여됐다.
그결과 일본에서는 83년 7월 약해AIDS로 혈우병환자가 첫 사망한 이래 400여명의 혈우병환자들이 AIDS로 숨졌다. 지금도 1,300여명이 정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제약회사가 사과와 보상의 의사를 비치며 피해자들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고 피해자들도 시간에 쫓겨 소송사건으로서의 약해AIDS는 조만간 해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와 잇속챙기기에만 눈이 어두웠던 정부와 의료계, 제약회사의 대죄와 치부는 차례차례 죽음을 맞을 피해자들의 고통과 함께 오래도록 남을 수밖에 없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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