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각제 개헌론/“정치전략 불과” “이젠 분권화를”(4·11쟁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각제 개헌론/“정치전략 불과” “이젠 분권화를”(4·11쟁점)

입력
1996.03.02 00:00
0 0

◎신한국당 백남치 의원/경험도 축적안돼 혼란만 초래지금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본말이 전도된 때아닌 논쟁이 일고 있다. 다름 아닌 내각제 개헌론이다.

국가의 권력형태를 바꾸자 하는 논의는 국가의 근본을 바꾸자 하는 것과 진배없다.

따라서 국가의 권력형태는 그 어떤 정파의 이익이나 현안을 해결키 위한 미봉책으로서 좌지우지될 수 없는 것이며, 거시적인 시각에서 그 나라가 가진 정치문화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때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일부 세력이 제기하는 내각제 주장의 배경에 대해 몇가지 의문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내각제를 주장하는 기본 저의가 무엇인가.

정치학에는 「사적동기의 공적동기화」라는 철칙(IRON LAW)이 있다. 즉, 어떤 정치적 주장과 논리속에는 「사적인 목적」이 교묘히 위장되어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아다시피 내각제는 양대 정당의 힘의 균형속에 제3정당 또는 군소 정당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현상을 종종 보이고 있다. 그것을 뒤집어 보면 내각제가 제3세력에게 권력장악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시점의 내각제 개헌론은 상대적으로 비소한 한 정파가 그것이 자신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인식하고 명분화한 정치전략에 다름 아닌 것이다.

둘째, 내각제가 과연 우리 정치문화에 합당한 제도일까.

우리 정치사에 내각제 경험은 극소하다. 제2공화국 시절 단지 1년 남짓 실시해본 적이 있을 뿐이며, 5·16쿠데타로 그 마저 중단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 정치문화에 있어 내각제 경험은 전혀 축적되어 있지 않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5·16으로 내각제 싹을 잘랐던 세력이 다시 그 주장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거치는 시행착오는 크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성장케 하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를 경험이 전혀 없는 제도의 틀 속에 밀어 넣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그 주장의 발원자들이 가진 공적 책임의식을 의심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는 바의 하나가 그 주장이 지금 우리 사회가 사실상 최초로 맞이하고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축제인 4·11총선을 퇴색시키고, 새로 구성될 15대 국회를 21세기를 대비하는 생산성 있는 국회가 아닌 개헌논의로 얼룩지는 파행국회로 전락시킬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충남 서천·52세

▲서울대 법대, 미컬럼비아대

▲서울 노원갑 위원장(재선)

◎자민련 허경구 전 의원/다양한 갈등구조 해결에 적합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의 동질성이 너무 강하다는 사실이다. 사회구성원간의 이질성이 전혀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문제점이다.

이미 화석처럼 굳어진 사회동질성에 조금이라도 금이가는 일이 생기면 금방 무슨 지역갈등이네, 민족분열이네하는 얼토당토않은 엄살이 튀어나온다.

그레고리 헨더슨의 말대로 한국정치의 병폐는 권력이 한점으로만 모이는 중앙집권적 성향이다. 이 성향이 독재를 낳게되고 권위주의의 원천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씨의 비극도 따지고보면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볼수 있으며 문민정부의 행태를 문민독재라고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진실로 다양성을 가지려면 이질성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의 다품종 소량생산이 정치에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계급 계층 인종 언어적 이질성도 없는 한국에서 무슨 다양성과 이질성을 가질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역간에 정치적 성향, 독특한 지역적 취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권력의 틀을 재조정해야하는 시기에 와 있다. 영남·호남의 이분천하가 중부권당의 탄생으로 삼분천하가 돼가고 있다. 이것은 권력의 등권이 아니고 분권의 시대에 와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내각제구도에 알맞는 현실이다. 권력의 핵을 다핵화하는 일, 그것은 곧 권위와 권력을 분산시키고 복잡다기한 갈등구조를 갖기 원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맞는 일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거의 호각지세의 지지도(48%대 46%)를 보이고 있다. 내각제를 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는 헌법학적 또는 정치학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 보다는 국민적 기질이나 정서의 측면에서 그 본질을 파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인을 「들쥐」에 비유한바 있지만 이제는 「들쥐」보다 「외로운 승냥이」에 비유할 수 있다. 군집성과 함께 이기적인 독자성도 아울러 갖고있다. 이러한 국민적 기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는 내각제밖에 없다.

야합의 신축성과 연합의 융통성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내각제야말로 개성의 발산을 극대화시키는데 능한 우리국민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제도이다.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로 민족의 제1도약을 이룩했다면 이제 우리는 다양성과 이질성, 개성과 자율을 보장하는 내각제로서 민족의 제2도약기를 맞을수 있을 것이다.

▲강원 인제·54세

▲고대, 미하와이주립대(정박)

▲서울 강동을 위원장(재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