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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리 저 「우리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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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리 저 「우리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요즘 읽은 책)

입력
1996.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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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이 굴절시킨 우리 지명 “바로세우기”/역사·어원적 철저고증 고유숨결 확인케지도를 펴놓고 지명을 확인하다 보면 슬그머니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 지명은 이렇게 중국과 닮았을까? 호남·한양·강릉·양양은 양자(양쯔)강 연안의 지명을 그대로 갖다 옮긴 것이요, 청주·전주·경주·원주·진주·상주 하는 식의 지명은 역시 중국의 도시 이름을 연상케 한다.

역사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때 모든 지명을 중국식으로 뜯어 고쳤다고 하니 아마 우리 고유한 땅이름이 그 때 한문식 개명의 세례를 일시에 받았을 것이다. 마치 창씨개명처럼, 우리의 지명은 일제때 다시 한 번 굴절된다. 식민행정상의 편의주의와 일인 특유의 한문 조어방식에 의해 대전·이리·논산·인사동 등의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 자기네 식의 우리 지명을 대할 때 혹시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기우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엊그제도 중국교수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이쪽에서 매번 「Seoul」로 써 보내는 데도 꼭 「한성」으로 주소를 쓴다. 그렇게 써도 다 알아보지 않느냐는 우월감같은 것이 그들의 심중에 있는 것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질 않다.

우리의 땅이름이 한문식 표현에 의해 얼마만큼 본래의 의미를 잃었고 우리가 지금도 그 오독위에서 살고 있음을 배우리선생의 책 「우리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토담·1994)를 읽고 실감할 수 있었다. 한탄강이 슬픈 전설때문에 생긴 이름이 아니고 큰 여울(대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울고 넘는 박달재가 박달나무와 상관없는 광명을 뜻하는 「밝」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의 사실로부터 우리가 그 동안 키워왔던 국토에 대한 상상력도 온전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허망함마저 느끼게 된다. 배선생의 우리 땅이름에 대한 탐색은 역사적, 어원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착실히 유래를 고증하고 오늘의 명칭의 허실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러면서도 난삽하지 않은 문체로 쉽사리 우리를 이해의 길로 이끈다. 한문 지명의 이면에 숨은 우리말의 숨결을 확인하면서 「아! 그렇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본래 땅이름 짓기는 제국주의에 있어서 정복과 지배의 첫 발을 내딛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마치 아메리카대륙이 인디언과는 상관없는 유럽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듯이. 우리 땅이름의 중국식·일본식 조어에 의해 은폐된 진실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배선생의 노력은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아직도 탈피하지 못한 식민지적 의식의 극복과 상관된 중요한 시도라 할 것이다.<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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