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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만해/77주년 3·1절 맞는 외동딸 한영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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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만해/77주년 3·1절 맞는 외동딸 한영숙씨

입력
1996.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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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변절자에 목침 던지며 일갈”/뜬눈 밤새우며 조국독립 고뇌/기념관 세우는게 마지막 소망『위채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등진채 앉아 뜬 눈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밤새 고뇌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일한 혈육으로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한영숙씨(62)가 3·1운동 77주년을 앞둔 28일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한씨는 만해가 항일운동의 마지막 등불을 밝히던 만년거처 심우장(서울 성북구 성북동·서울시 지정 기념물 7호)에서 어린 시절 지켜보던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했다.

90년부터 남편 정택근씨(64·무역업)와 함께 단둘이 심우장을 지키고 있는 한씨는 34년 만해와 유숙원여사(65년 사망)사이에 태어났다. 만해는 한 독립운동가의 중매로 유씨와 만나 30년께 결혼했다고 한다. 한씨는 광복을 한해 앞둔 44년 6월29일 만해가 임종을 맞은 날까지 심우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만해의 곁을 지켰다. 한씨는 광복 전까지 호적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고 소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가 딸이 일본식 수업을 받고 일본식 이름으로 호적에 올려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기억이 많지는 않다는 한씨는 『변절한 사람들이 아버님을 찾아와 뵙기를 청했을때 일갈하고 목침을 내던지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고 회상했다.

한씨의 남편 정씨도 대대로 항일운동을 해온 집안. 정씨의 13대 할아버지인 농포 정문부는 임진왜란때 함경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숙종때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아버지도 항일운동에 몸바쳤다.

90년에 만들어진 「만해 기념회」에 참여하고 있는 부부는 만해의 사상과 정신을 담은 기념관을 설립하는 것이 마지막 소망이다. 한씨는 재홍(37)·호원(35)씨 형제와 원주씨(32)등 3남매를 두고 있다.<박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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