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새학기를 맞으며/정구영 서울여대총장(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새학기를 맞으며/정구영 서울여대총장(한국논단)

입력
1996.02.29 00:00
0 0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이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지독한 마약중독자에다 알코올중독자였다. 너무나 인생이 저주스러워 자살도 여러 번 기도했지만 실패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범죄를 거듭하다가 드디어는 종신형을 받아 감옥에 살고 있었다.동일한 아버지를 모시고 산 두 아들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뜻밖에도 두 아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즉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이 마약및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인죄로 감옥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자녀를 셋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사랑하며 오순도순 가정을 이끌어 갈 뿐만 아니라 어떤 큰 회사의 지점장으로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한 기자가 똑같은 질문을 각각 두 사람에게 던졌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런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처지가 각각 다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의 답변은 똑같았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성장을 했는데 제가 이렇게 되지 않고 달리 어떻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왜 똑같은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똑같은 이유 때문에 두 아들이 전혀 다른 인생행로를 가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본다.

내일이면 3월1일.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날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행사이면서도 새 학생들을 맞아들이는 마음은 언제나 풋풋하고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게 된다. 학생들을 맞을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중 얼마전 신문마다 대서특필한 한 청년의 모습과 초라하게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두 청년의 모습이 겹쳐져서 어른거린다.

○대비되는 두 모습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부각된 한 청년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후련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1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온갖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6년만에 4전5기하여 서울대 인문대 수석을 했다는 것은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는 가난한 집 자식들이 공부 잘한다는 것은 다 옛말이고 요즘은 과외도 시키고 신주단지 위하듯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여유있는 집 자식들이 공부도 잘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고 기가 죽어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IQ가 113이라도 마음먹고 달려들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는 데서 온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대학입시에 낙방한 재수생 2명이 서울 한강에서 동반 투신자살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 중 한 청년은 취직을 해서 대학등록금으로 매달 20만원씩 저금까지 하며 주경야독하던 처지였다고 한다. 어찌 이번 뿐이겠는가. 매년 입시철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 입시에 실패한 청년들의 자살소식이 아닌가. 차마 자살까지는 안한다 해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으리라는 것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왜 어떤 청년은 4전5기로 장애물을 극복하며 살아가는데 왜 어떤 청년은 스스로 생명을 끊어야만 할 만큼 그 상황이 절박하게 느껴졌을까. 혹자는 말하기를 『신은 가끔 빵 대신에 벽돌을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낙심해서 원망하다가 그 벽돌을 발로 차서 발가락을 부러뜨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어떤 처지에 있느냐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그 처지와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생각이 난다.

○장애를 디딤돌로

어느 날 은퇴를 눈 앞에 둔 우두머리악마가 평소 자신이 즐겨 쓰던 무기들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아주 평범해 보이는 낡은 무기에 최고의 가격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낡아빠진 그 무기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다지도 비싼지를 물었더니 그 우두머리악마의 설명인즉 『그 무기의 이름은 낙심인데 이 무기가 인간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사람을 쉽게 쓸모없는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비쌀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흔히 봄을 희망의 계절이라고 부르며 젊은 청년시절을 꿈 많은 시절이라 부른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약하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수시로 밀려오는 「낙심」이라는 공격의 화살을 꿈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막아내며, 크고 작은 장애물을 오히려 인생이라는 큰 건물의 주요 건축재료로 삼아 불굴의 투지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그 사회는 든든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새 학기를 앞둔 오늘, 새삼스럽게 두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