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가 부패, 타락, 저질화하고 국민으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된 원인은 선거의 혼탁·부정과 함께 정치인들의 갖가지 반민주적인 행태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직접적인, 특히 한국정치를 위기로까지 이르게 한 가장 대표적 원인은 정치도의가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도의는 한마디로 민의 존중과 국민과의 약속 실천, 그리고 윤리적인 의무이행등 정치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몸가짐이다.이같은 정치도의가 올들어 총선과 관련, 갖가지 반민주적인 행태로 크게 훼손된 것도 그렇지만 특히 최근 일부 중진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는 국민을 실망케 하고 있다.
먼저 신한국당 소속의 박정수 의원이 전국구 의석을 보장받고 하루 아침에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바꾼 일이다. 선거때만 되면 후보공천과 의석보장을 위해 유·무명 인사들이 철새처럼 이당저당을 기웃거려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박의원의 경우 4선의 중진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IPU(국제의원연맹)집행위원인 그는 의원외교를 계속하기 위해 당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지역구민들의 의사를 물었어야 하지 않는가.
다음, 신한국당 출신으로 역시 중진인 박재홍 의원이 탈당, 자민련에 입당하여 지역구 후보공천을 받기로 한 것이다. 물론 지역구 후보공천을 받지 못하자 타당에 입당한 인사들이 여러 명 있지만 적어도 당적을 바꾸는 것은 정견에 대한 입장 변경이므로 국민에게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했어야 했다.
끝으로 국민회의소속 신순범 의원의 식언, 말바꾸기다. 작년 여름 시 프린스호의 기름유출사건 후 무마조로 관련회사로부터 군수·서장등이 뇌물을 받았음이 드러났을 때 신의원은 『단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했었다. 그런 그가 검찰의 수표추적으로 증거가 확인되자 하루만에 「부인」을 뒤집고 1천만원의 수뢰를 시인한 것은 국민을 우롱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당적을 바꾸는 것은 법적으론 아무런 하자가 없다. 또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에 대한 도의적 의무와 자세다. 무엇보다 중진의원들이 그같은 반윤리적 행태를 저지르고는 국민에게 단 한마디 사과를 하지 않은데 아연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의 민주정치는 약속의 정치, 신의의 정치, 도의의 정치다. 국민을 배신하고 속이는 정치인은 가차없이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중진정치인들이 이처럼 정치도의와 신의를 외면하는 한 이 나라 민주발전은 어둡기만 하다. 그런 정치행태를 수용하는 정당들도 반성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주권자인 국민이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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