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외교부 성명을 통해 미국과 평화협정체결 이전에 잠정협정을 하자고 제의한 것은 지난 20여년간 끈질기게 주장해 온 대미평화협정체결안을 명칭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려는 저의를 담은 그같은 제의에 한미 양국이 거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북한이 한동안 뜸하던 평화협정안을 새해들어, 특히 요즘같은 시기에 다시 제기한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이번 북한의 잠정협정제의는 갖가지 저의를 담고 있다. 우선 정전협정을 완전 무효화시키고 미국과 새로운 평화의 틀인 새 협정을 맺음으로써 한반도안정의 이니셔티브를 확보하며 한국을 완전 배제하여 한미관계를 이간시켜 미군철수를 재촉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특히 미국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과 해결체제를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여론을 부추겨 장차 연락사무소 조기개설및 대북무역제재완화와 함께 경제원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60년대초부터 남북한간의 군사협정을 주장하던 북한이 70년대 들어 대미 직접평화협정을 들고 나온 것은 73년 월맹이 미국과 휴전협상을 통해 미군철수를 관철시킨 데서 자극받았었다. 74년 최고인민회의의 의결로 평화협정체결을 제의하는 편지를 미국상하원에 발송한 이후 90년대 들어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북·미핵협상 쟁취에 자신을 얻어 94년이래 군사정전위서의 일방적 철수와 인민군 판문점대표부설치, 중립국감독위원국 축출 등에 의한 정전협정 무력화 기도로 평화협정체결을 촉구했었다.
사실 이번 잠정협정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은 작년 여름 평양을 방문했던 미 카네기평화재단의 셀릭 해리슨연구원을 통해 평화협정 이전에 중간적인 협정, 즉 남북군사대화와 북·미평화협상의 병행추진안을 제기한바 있다.
중간적 협정이든 잠정협정이든 모두가 평화협정을 위장한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그들의 평화협정 제기는 논리적으로 타당치 않다. 먼저 유엔과 맺은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다음, 당시 전쟁당사자는 북한·중공 및 유엔이며 미국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유엔군의 일원이었던 한국을 배제하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정부는 긴 안목에서의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서도 이같은 제의를 거부하는데 그치지 말고 평화협정체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남북 당사자간의 직접협상, 주변국과의 보장협의, 기본합의서와 비핵선언의 우선이행 등의 당위성 등이 지켜지는 원칙하에서 평화협정추진방침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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