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가사상 부침많은 삶에 녹여/낭만과 탈속의 시 1,000여편 담아/내용·형식 모두 자유정신을 추구이백(701∼762) 시의 매력은 마치 광인처럼 극단을 너무도 쉽게 넘나드는 사상적, 정서적 모순성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는 유가와 도가의 사상이 동시에 녹아 있고 참여와 회피의 정서가 공존한다. 이같은 모순과 광기가 그의 시 1,000여편을 모아놓은 「이백시선」에 고스란히 담겨 동양 시문학의 정수를 오늘에 전해주고 있다.
이백 시의 복잡성은 그의 삶에서 유래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문을 익힌 뒤 26세부터 유랑생활을 시작한 이백은 43세의 나이에 뒤늦게 당 현종에게 발탁돼 관리로서 자신의 포부를 펴보려 했다. 그러나 타락한 조정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환관 고력사에 미움을 받아 3년만에 쫓겨난다. 55세 때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 의병에 참가했다가 뜻밖에 반역죄인으로 몰려 귀주로 유배됐다. 59세에 사면돼 유배지에서 풀려났으나 이후에도 방랑생활을 계속하다가 객지에서 쓸쓸하게 병사했다.
이같이 부침많은 삶 때문에 이백은 용행사장(써주면 나가서 일하고 안써주면 숨는다)의 태도를 갖게됐다. 인생의 양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입공보국이라는 유가사상과 낙관적인 태도라면 음지로부터 생겨난 것이 탈속구도라는 도가사상과 은둔자적 정서이다.
「이백시선」에 실린 「자야오가」와 「산중문답」은 바로 이같은 양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백은 「자야오가」에서 「장안 하늘에는 허허한 달빛이 마냥 퍼지고/거리 집집마다 밤새 다듬이소리 요란해/소슬한 가을바람 불어 멈추지 않으니/모두가 옥문관 넘나드는 애타는 정이리/어느날 북쪽 오랑캐 평정하고/그리운 임 싸움터에서 돌아오리」라고 노래한 반면 「산중문답」에서는 「어째서 푸른 산중에 사느냐 물어봐도/대답없이 빙그레 마음이 한가롭다/복숭아꽃 흘러 물 따라 묘연히 갈새/인간세상 아닌 별천지 있네」라고 읊는다.
이백의 시는 건강한 사회에 대한 낙관적 창조정신을 가졌다는 점에서 굴원(전국시대 시인)과 출발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종착점은 판이했다. 굴원이 굽힐 줄 모르는 저항의 화신이었다면 이백은 억눌림에 대한 탈출구로 탈속의 경지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백시선」에 담긴 시들은 내용에 걸맞게 형식적인 차원에서도 투철한 자유정신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시 1,000여수 가운데 형식이 까다로운 율시는 80여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구속이 적은 고체시, 가행, 악부시 등이다.
오늘날까지도 이백은 낭만적 지식인의 전형으로서, 억눌린 민중들의 정서적 위안자로서 누구보다 따뜻한 사랑을 받는 시인으로 남아있다.<이은호 기자>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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