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막부·명치정부이래 지도등서 “명확”/일제륙참지도도 인정… 자료체계화 시급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만 일본인들 스스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수없이 많다. 「조선왕조의 독도영유와 일본제국주의의 독도침략」 「일제하의 독도와 해방직후 독도의 한국반환과정 연구」등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서울대 신용하(신용하)교수(사회학)는 『정부차원에서 독도가 한국땅임을 입증하는 일본측 문헌과 자료를 발굴,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교수가 소개하는 일본측 자료들을 정리해본다.
◇은주시청합기=울릉도, 독도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 1667년 일본 운주지방의 번사였던 재등풍선이 편찬. 『일본의 은기도로부터 서북쪽으로 배로 두 낮 하루 밤 거리를 가면 송도(당시의 독도)가 있고, 송도로부터 하루낮 거리에 죽도(당시 울릉도)가 있으며, 이 두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에서 은기도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한즉 일본의 서북경계지는 은주(은기도)로 한계를 삼는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접양지도=1785년 간행된 이 지도(75·2㎝×50㎝)는 도쿠가와(덕천)막부시대의 학자 하야시(림자평·1738∼1793)가 그린 것으로 조선을 황색, 일본을 녹색으로 칠했는데 울릉도와 우산도(우산도·당시 독도)를 조선의 색깔인 황색으로 표시하고 그 옆에 「조선의 것으로」라고 명시했다. 17세기말 조선과 일본간의 「울릉도·독도논쟁」(당시 일본 호칭으로 「죽도일건」)이 해결돼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것으로」 확정됐다는 일본 덕천막부의 최종결정(1696년 1월)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덕천막부를 타도한 메이지(명치)정부는 출범직후인 1869년(조선 고종6년, 일본 명치2년) 12월 조선사정을 내탐하도록 외무성 고관들인 좌전백모, 삼산무, 재등영등을 파견했다.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 부속으로 돼 있는 시말』도 조사하게 했다. 이들이 1870년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에 제출한 보고서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다. 태정관은 보고서를 받고 울릉도(죽도)와 독도가 조선영토라는 사실을 확인, 일본정부의 공식문서인 「일본외교문서」(1869년 11월 1일자)에 수록했다.
◇태정관 결정서=일본 내무성은 1876년 10월 16일 시마네현이 죽도와 송도를 현의 지도와 지적에 포함시켜야 하느냐고 질의하자 5개월간 각종 자료를 조사, 『죽도와 송도는 조선영토이며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판도의 취사(취사)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내무성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고 이듬해 3월 17일 태정관에 품의서를 제출했다. 태정관은 『죽도외 일도의 건에 대하여 본방(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는 지령문을 내렸다.
◇조선동해안도=일본 해군성이 1876년 작성한 지도(99×66㎝). 독도를 조선영토에 포함시켰고, 지도 오른쪽 아래에 실물 모양의 독도를 그려넣었다. 이 지도에는 독도를 3·5마일 정북 방향에서 그린 그림, 북서 10도 방향 5마일 거리에서 그린 그림, 북서 61도 방향 14마일 거리에서 그린 그림이 사진처럼 선명하다.
◇일본전쟁실기=도쿄박물관이 1905년 펴낸 이 문헌의 제76편에는 부록으로 1905년 6월 현재의 「한국전도」가 실려 있다. 이 지도에도 죽도(독도)를 원래의 경도보다 안쪽으로 이동시켜 한국근해에 표시,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1905년 1월 일본내각이 독도를 비밀리에 시네마현에 편입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정부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지도구역일람도=일본육군참모본부 육지측량부가 1936년 만든 지도. 대일본제국에 속한 모든 지역을 일본 혼슈(본주), 조선, 대만등으로 집단분류하면서죽도(독도)를 울릉도와 함께 조선구역에 포함시키고 조선구역과 일본 혼슈구역을 구분하는 선을 그어놓았다. 이 지도는 일제 패망후 연합국이 대일본제국을 해체할 때 기초자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일본의 영토와 주권의 행사범위를 정의한 「SCAPIN(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의 특정지역 집단분류가 이 지도와 일치한다. SCAPIN 제677호 제3조는 죽도(독도)를 일본영토에서 빼 한국에 귀속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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