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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북한청년의 죽음(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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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북한청년의 죽음(장명수 칼럼)

입력
1996.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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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평양에서 북한경비병들과 총격전을 벌이며 러시아무역대표부에 진입하여 정치적 망명을 요구했던 북한 청년이 망명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이름이 조명길이고, 나이는 25세이며,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하사라는 것뿐이다.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망명하려고 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 사건을 세계에 처음 알렸던 이타르 타스통신은 『 러시아대사관측이 조씨를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북한 특수부대의 대사관 진입을 허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조씨가 사살됐다』고 보도했다가 곧 『조씨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정정했는데, 자살인지 사살인지 석연치 않은 상황이다.

그 사건은 최근 잇달아 일어난 북한의 외교관부부 망명,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자매의 망명과 함께 북한의 급격한 붕괴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평양의 심장부인 김정일 집무실 근처에서 총을 쏘며 망명을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 사건들은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그 어둡던 시절 역사의 수레바퀴는 매우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앞으로 굴러갔다. 조명길이라는 북한청년의 격렬한 죽음은 전태일의 격렬한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 북한 청년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망명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북한에서 목숨을 걸지 않고 그 체제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군인이므로 총을 가질 수 있었던 젊은이가 그 총을 쏘면서 탈출하고자 했던 심정을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수레바퀴는 이미 구르고 있다. 평양에서 일어난 그같은 총격사건을 세계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변화다. 평양에 주재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3개 통신·신문중 중국 매체들은 그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이타르 타스통신은 첫 기사를 때렸고, 세계의 기자들이 평양의 러시아무역대표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사건을 취재했다. 평양이 더이상 완벽한 장막으로 자신을 숨길 수 없음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평양의 변화는 남한의 우리들에게도 낯선 과정이 아니다. 그 북한 청년과 같은 죽음을 우리도 많이 겪었다. 북한의 격변을 이해와 인내로 지켜보면서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동포들을 도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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