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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총소리의 신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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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총소리의 신호(사설)

입력
1996.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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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외교관부부등의 귀순과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 자매등의 탈출에 이어 평양주재 러시아무역대표부에 조명길하사가 경비병 3명을 사살하고 난입, 망명을 요구하다가 피살된 사건은 북한체제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쿠바등 지금까지 공산국가에서 주민들이 외국공관에 난입하여 서방으로의 망명을 요구한 것은 흔히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반대세력을 철저히 숙청, 제거하여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세습독재체제를 구축한 북한에서 이른바 무장망명사건이, 그것도 북한의 각종 권력기관들의 인근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배경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김일성사망 이후 불안정한 정치정세, 경제파탄으로 인한 극심한 식량난 에너지난등 생활고와 숨막히는 김부자 세습독재에 대한 저항등을 생각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아무리 김정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해도 당과 군의 대군민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조하사의 망명기도사건과 관련, 러시아의 태도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구소련과 북한은 1957년 범죄행위를 한 자는 인도요청이 있을 경우 신병을 넘겨주기로 한 소위 사법공조협정을 맺은바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어서 과연 러시아가 망명을 허용할 것인가에 깊은 관심이 모아졌었다.

그러던 차에 조하사가 죽은 것은 자살이라는 말도 있으나 석연치 않다. 러시아의 관할영토인 무역대표부 안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면 이는 엄연한 주권침해인 것이다. 만일 러시아가 사건이 비화되는 것을 우려, 사살을 묵인했다면 중대한 반인도적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무장망명사건은 미수로 끝났지만 사건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이번 사건이 당장 북한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지만 체제내부가 경제난, 권력갈등, 통제력악화, 주민반발의식의 제고등 일련의 중환상태이며 자칫 탈북사태의 신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북한은 심하게 표현하면 낡은 기구와 같이 바람이 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추락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북한체제에 구멍이 나고 혼란과 탈북사태가 빚어질 경우 한반도는 먹구름에 접어들고 짐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될게 틀림없다. 총리 주재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북한사태를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단발성 대책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정부의 모든 부처가 나서 북한에서의 중대사태발생에 대비, 치밀하고 종합적인 세부계획을 세우고 다듬어야 한다. 「북한사태」는 언제 어느날 갑자기 돌발할 것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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