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평야 등에 업은 물자형 명당/500년 고가 100여채 즐비우리조상들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마을은 언제 찾아가 보아도 고향집 같은 정취를 느낄수 있다.
그중에서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진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양동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도 유명하긴 하지만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들판을 내려다보는 양동의 수많은 기와집들은 하회마을을 압도한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설창산 기슭에 터를 잡은 양동마을은 100여채가 넘는 기와집들이 고색을 뽐내고 있다. 민가로서는 드물게 보물로 지정된 것이 3곳이나 되며 중요민속자료지정이 12곳, 향토문화재 지정이 11곳 등 문화재급 전통가옥들이다.
경주를 찾는 이들조차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양동마을은 분통골 물봉골 안골 장태골로 불리는 네갈래로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마을 가옥구조가 대부분 배산임수의 남향집인데 비해 이곳은 말 물자처럼 뻗어내린 네줄기의 산등성이에 터를 닦은 특이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양동마을이 풍수지리상 말 물자 형의 명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동마을이 조선시대 막강한 사대부들을 배출하며 세도를 떨칠 수 있었던 배경은 풍수지리의 혜택보다 마을 뒤편 드넓은 안강평야가 있었기때문이다. 형산강이 포항으로 빠지기전에 충적평야를 이룬 것이 안강평야인데 양동마을은 이 들판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부촌이었다. 그 영광이 500년 묵은 기와집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양동마을 고가들은 조선초 15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 조선 중후기의 양반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위세높은 대종갓집일수록 높고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그 아래에 하인들의 집이 있다. 이는 당시 계급사회 성격을 보여주는 예이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뿌리가 된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출한 곳으로 인근에 회재 선생이 은둔했던 독락당과 그의 신주를 모신 옥산서원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경주시내에서 안강행 시외버스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대구에서 포항행 시외버스를 타고 안강에서 내려도 된다. 안강에서 양동마을까지는 하루에 세번 버스가 운행되며 택시로는 10분거리이다.<이형권역사기행가>이형권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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