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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망명처리 신중히(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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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망명처리 신중히(사설)

입력
199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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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등이 오랫동안 요양하던 모스크바를 떠나 서방 세계로 탈출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90년대 이래 북한의 가혹한 탄압정치와 경제난·식량난으로 주민과 벌목공 등을 포함한 각계 인사들이 잇달아 귀순해 오고 있는 터에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전처 등이 탈출했다는 것은 북한 체제의 핵심부분까지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중대하고 의미 있는 조짐으로 봐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성씨 일행의 망명이 성공 내지 매듭되기도 전에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노출된데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북한이 어떤 체제인가. 북한주민들이 탈북―망명한다는 것은 목숨은 물론 가족의 안전까지 건 죽음의 도박인 것이다.

북한형법은 「다른 나라 또는 적편으로 도주하거나 외국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할 경우」 조국반역죄(52·53조)로 규정, 재산 몰수와 함께 사형에 처하고 있다.

따라서 탈북은 이처럼 엄혹한 상황에서 결행되는만큼 그들의 안전을 위해 기밀을 철저히 보안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성씨 일행의 망명이 완결되기도 전에 이처럼 탈출사실이 노출된 것은 관계당국의 중대한 실책이자 직무태만이라 하겠다. 작년 가을부터 이들의 동태를 주시, 일련의 연락을 취했다면 끝까지 보안을 유지했어야 했다. 언론도 당사자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보도를 자제했어야 했다.

일단 성씨 일행이 모스크바를 탈출, 스위스를 거쳐 서유럽국가에 도착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이것으로써 망명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선 정부가 현지에 급파한 특별대책반이 그들과 만나 남한으로의 귀순여부를 타진해야 하겠지만 당국은 성씨가 일반적인 귀순자와 달리 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의 후계자인 김정남의 생모라는 점에서 귀순협의와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무작정 남한으로의 귀순을 서두르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북한이 일반적인 귀순사건과는 달리 남한당국의 「조직적인 납치극」이라 역선전할 여지가 있는만큼 현지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입회하의 자유의사확인 절차를 반드시 거치게 해야 하고 그들의 망명지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들이 한국행을 희망해도 일단 안전한 서방국가로 가서 일정기간 지내게 한 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서울로 오게 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서울로 직행할 경우 김정일은 안으로는 주민통제와 탄압을 가하고 남한에 대해서는 해외의 공관원·상사원·관광객·유학생 등의 납치와 함께 모험적인 대남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관계당국은 이번 귀순교섭 과정의 노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성씨 등에 대한 보안은 서울 귀순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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