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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아파트 임대 체류/김정일 전처 탈출­모스크바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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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아파트 임대 체류/김정일 전처 탈출­모스크바 거주지

입력
1996.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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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시장 가까워 요양에 적합한 지역/일인 많이 살아… 신분 기려 선택한듯/북 차량 수시출입 동향감시에 신경쓴듯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이 살았던 모스크바 남서쪽 바빌로바가 85번지 외교관전용 아파트에 13일 상오 10시(현지시간)께 도착했을 때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벤츠승용차(번호 D 087―0X8)가 급히 빠져 나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외교관 전용아파트라는 뜻의 우페데카(UPDK) 아파트로 불리는 이 아파트 단지는 겉으로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2백여세대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모두 3동으로 돼있고 일본을 비롯한 북한 독일 우크라이나등 외국 외교관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3동 가운데 두번째 동이 성이 살고 있던 아파트였다.

아파트 단지 출입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아파트 각동 내부로 들어가는 현관문은 비밀번호를 알아야 열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부착돼 있어 외부인은 출입이 일단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외국인의 양해를 얻어 들어가 본 첫 동 내부는 모스크바의 여느 우페데카와 다름이 없었다.

각 층마다 좌우에 3가구씩 모두 6가구가 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현관 문은 대부분 안전을 고려해 철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위의 말에 따르면 1년전에는 북한대사관이 두번째 동의 1, 2, 3층을 통째로 임대했었으나 지금은 3층만 임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성이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북한인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아파트 수위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북한측은 성이 남의 눈에 잘 띄지않도록 일본인이 다수 거주하는 이 아파트를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 아파트에서 5백정도 떨어진 곳에 바빌로바 병원이 있고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사시사철 출하되는 체료무쉬킨스카야 시장도 멀지않아 성의 요양에는 적당한 아파트였던 셈이다.

이 아파트는 또 모스필리모프스카야가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차량편으로 10분거리에 있어 북한 당국이 성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감시하기에 비교적 손쉬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파트 수위들은 북한측 차량번호인 087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밝혀 북한 대사관측이 성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러시아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 90년께 성의 모스크바 거주설이 나돌아 확인하려했지만 실패했으며 작년에도 본부 지시에 따라 사실 확인작업을 벌였으나 정확한 사실은 알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사관의 다른 관계자도 러시아측에 성의 모스크바 거주설을 문의한 적이 있지만 러시아측은 이같은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성혜림은 누구/경남 창녕출신 서울서 어린 시절/여배우 생활 60년대 김정일 만나

서방으로 탈출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59)는 김정일과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다는게 정설이다.

언니 혜랑씨(61)와 오빠 일기씨등 성씨 가족들은 원래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 출신으로 어린시절을 서울서 보냈다. 혜림씨의 경우 서울사대부국을 나와 서울사대부중 재학중이던 48년 한때 남로당 자금책으로도 활동했던 부친 성유경씨와 어머니 김원주씨(94년11월 사망)를 따라 월북했었다. 오빠 일기씨는 이때 서울에 혼자 남았다가 49년 월북했으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채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국군에 체포된뒤 전향해 지금까지 서울서 살고 있다.

김정일보다 5살 연상인 혜림씨가 김을 처음 만난 것은 60년대 중반 우인희 김현숙등과 함께 북한 최고의 여배우로 각광을 받을 때였다. 그녀는 원래 소설 「땅」의 저자이자 북한문예계 거물인 문예총위원장 이기영의 장남 이평과 결혼했었으나 2년만에 그녀의 미모에 반한 김정일이 강제로 이혼시킨 뒤 동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혜림씨는 그러나 73년 김정일이 집무실 타자수 김영숙을 총애하며 딸을 낳자 충격을 받아 심신쇠약증세를 보이기 시작, 여행겸 치료를 위해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지내왔다. 82년부터는 언니 혜랑씨와 같이 주로 모스크바에 체류해왔으며 이따금 평양에 들른 것으로 전해졌다.<홍윤오기자>

◎김정일의 여인들/홍일천­24세때 첫 결혼상대자/성혜림­연상유부녀,장남 낳아/김영숙­두번째 결혼 1남1녀/고영희­북송교포출신 무용수

김정일의 첫 결혼 상대자는 홍일천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24살 때인 1966년 결혼한 홍은 김일성종합대학 노문학부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정일과의 사이에 딸 하나(혜경)를 두었다.

김정일은 71년께 노동당 문화예술부 부부장을 맡으면서 여배우·무용수들과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당시 여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 성혜림이었다. 김정일은 5세 연상인 유부녀 성을 농락, 장남(정남)까지 낳았으나 본처로 대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귀순자들의 증언이다.

성씨는 남한 출신으로 지난 48년 월북, 「두만강」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이기영씨의 아들 이평과 결혼한 사이였다. 이들 부부 사이에 김정일이 끼어들어 강제로 이혼시키고 내연관계를 한동안 가졌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두번째 공식결혼은 73년께 혁명가 유자녀인 김영숙과 이뤄졌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과 딸 하나씩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78년 김정일 생일 때 그의 집에 초대됐던 영화배우 최은희씨는 유일하게 김정일 가족을 만나 본 외부인이다. 최씨는 저서 「김정일 왕국」에서 김영숙(49)을 「공식」부인으로 소개한 바 있다.

김정일은 북송교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와 또 한차례 결혼했다는 설이 있다. 또 80년대초부터 손성필(현 러시아주재 대사)의 여동생 손희림(당시 32세)과 관계를 가져 딸 둘을 두었다는 설이 있고, 북한에서 이름난 여배우인 홍영희를 애첩으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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