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벌이 노동생활… 여자속옷도 중고 구입『북한대사관은 북한사회의 축소판입니다』
현성일 전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이 전하는 북한 외교관의 생활은 외화벌이에 쪼들리는 노동자의 삶에 불과했다. 대사 3백50달러, 공·참사 3백20달러, 1등서기관 2백70달러. 이역만리에 떨어져 고생하는 북한 공관원들의 월급명세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부터는 이마저도 끊겨 버렸다.
잠비아 대사관의 1년 운영경비는 6만달러. 그나마 지난해 1월 2만달러가 송금된 후로는 북한 당국으로부터는 소식이 없다.
이에 따라 잠비아 대사관은 부업으로 코뿔소 뿔, 상아밀수등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멸종동물인 코뿔소를 보호하자는 유엔의 감시가 강화한 뒤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궁여지책 끝에 대사관은 버스 임대업까지 해야 했다. 지난해 5월 탄자니아에서 일본제 중고 버스를 무관세로 들여와 현지인에게 임대해 매월 1천2백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마약밀매도 「부업전선」에서 빠지지 않는다. 마약밀매 실적이 뛰어난 공관원은 인사상의 특혜까지 받고 있다.
94년 탄자니아에 어학실습생으로 위장 파견된 북한 공작원 강성국(36)은 마약밀매로 외화벌이 전투를 성공적으로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탄자니아 경제참사로 승진했다. 현씨에 따르면 강의 실적은 분기당 5만∼10만달러로 15개 아프리카 주재 북한공관의 운영비를 강 혼자서 조달한 셈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외교관으로서의 긍지가 사라져버린지 이미 오래다. 현씨는 『한나라의 얼굴인 외교관이 밀수행각이나 벌이는 데 어떻게 외교가 되겠느냐』며 『이런 비참한 현실 탓에 해외에 나갈 때면 벙어리반 귀머거리반으로 적당히 때우는게 제일』이라는 말이 북한외교관 사이에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현씨부부는 또 93년 11월 잠비아 부임때 데려온 아들을 6개월만에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2백50달러의 박봉으로 자녀까지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인 최수봉씨는 『잠비아 대사관 직원부인 4명이 「엄혹한」시련을 이기기 위해서는 안쓰기 운동 외에 대안이 없었다』고 전했다. 최씨는 『월급이 끊긴 지난해 8월부터는 50달러로 한달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잠비아 빈민들이 이용하는「남새시장」(야채시장)을 이용하는데 1센트를 아끼기 위해 흑인 장사꾼들과 싸우다 보면 낯뜨거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게 최씨의 고백이다.
남편의 신발과 옷, 여자속옷도 중고시장에서 사들인다. 최씨는 『정품옷은 아무리 싸도 50달러 정도이기 때문에 살 엄두를 못낸다』며 『대사관 직원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일부러 허름한 옷차림을 한뒤 중국인 행세를 한다』고 전했다.
쌀 고기 치약 칫솔등 생필품을 구입하는 일은 이웃 짐바브웨에 출장가는 외교관 남편들의 몫이다. 잠비아보다 늦게 독립한 이웃 짐바브웨는 물가가 싸서 생필품 구입처로 애용된다.<조철환기자>조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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