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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구속기준의 괴리(박승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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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구속기준의 괴리(박승서 칼럼)

입력
1996.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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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줄곧 뒤숭숭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형사고의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에 비자금, 5·18등 온통 세상을 뒤흔든 대사건이 터져나와 거물급들이 구치소로 끌려가는 장면이나 법정에 불려나오는 모양을 우울한 심정으로 보고 읽고 살아야만 한다. 누가 감옥에 갇히고 며칠후면 누가 구속될 것이라는 보도가 대서특필감이고 보면 마치 삼엄한 대변혁기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구속당하는 사람은 검찰청 현관에서 양 팔을 수사관리들에 맡긴채 풀죽은 표정의 포즈를 취하며 플래시의 세례를 받아야 할 의무라도 있는 듯이 되어 있고 내란죄 기소의 여운 속에서 이번에는 민선구청장이 한달여전에 공선법을 어겼다 하여 경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긴급구속된 사례도 생겼다.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요건은 범죄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하였을 때 법원에 의한 사법적 심사를 거쳐 발부된 영장에 의하도록 되어 있다. 긴급구속이란 그러한 요건에 보태어 사태가 긴급을 요하여 법관의 영장을 받을 수 없을 때에 예외적으로 수사기관이 취할 수 있는 조치라 함은 지극히 상식에 속한다. 이제 「역사 바로세우기」수사도 서서히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가고 있고 4·11총선이라는 정치적 격돌이 앞에 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자세로 작금의 사태를 냉철하게 살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백성탄압의 수단

러시아의 작가 솔제니친은 「수용소군도」의 서두에서 「당신은 체포되었소라는 속삭이는 음성을 들었을때, 당신의 우주와 그 중심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라고 쓰고 있다. 구금은 인간의 신체의 자유의 박탈이다. 사람에게 생명의 박탈 다음 가는 고통이 바로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일이다. 그러기에 지난 날의 전제군주는 백성을 탄압하여 권력을 누리는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이 자유의 박탈을 즐겨 써왔고 피치자들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피로 항쟁해 왔다. 그리하여 중세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가 나왔고 인신구속에 대한 국왕의 전횡방지의 장치 때문에 그 대헌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유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흔히 사극에서 「저 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라는 국왕의 호통소리가 바로 폭정의 상징으로 들리게 되는 것도 신체자유의 박탈이 인간에게 무서운 공포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인권이라는 낱말을 높이 외치고 살고 있고 그리하여 우리를 자유국가라고 부르며 헌법에 국가의 궁극적 목표가 국민의 인권보장에 있다고 쓰여져 있기도 하다. 원래 근대사회이래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란 전통적으로는 위법부당한 인신구속을 당하지 않는 권리를 말하여 왔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행 헌법도 유달리 인신구속에 관해 장황한 보장규정을 두고 있는 터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의 신체자유보장의 실태는 법대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고 그것이 만성화하여 별로 깊은 반성없이 흘러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서 있노라고 호언하지만 인권보장의 전형적 모습인 인신구속문제에 관한 한 우리의 의식수준은 중세기의 암흑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남의 나라들은 형사피의자를 잠정적으로 구금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자유에 대한 침해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실제로 인신구속의 기준이 되어 왔음에 비해 우리의 경우 헌법이 명언한 형사피고인에 대한 무죄의 추정은 허황한 공염불일뿐이고 수사기관에 의해 범죄혐의를 받게 되면 꼭 구금되어야 함이 올바른 수순인 것같이 보여지며 불구속수사란 마치 뒤에 숨은 정실 때문에 은총을 받은 것으로 곡해되어 오기도 했다.

○신조어 사법처리

근래 언론에서 「사법처리」라는 신조어가 매일같이 쓰여지고 있다. 그 뜻이 수사기관에 출석요구를 받아 철야조사라는 온당치 못한 절차를 거쳐 구치소로 간다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빗나간 인식에 연유한다. 흔히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을 당장 구속지 않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러한 법감정이나 사법적 정의감이란 후일 그가 엄격한 재판을 거쳐 유죄로 확정되었을 때 생각해야 할 일들이다. 법이 정한 인신구속의 조건으로 증거인멸의 염려를 들고 있지만 유죄의 증거를 수집하여 보존하는 일이 수사·소추기관의 임무일진대 그것이 인신구속의 잣대가 됨은 어색한 일이다.

21세기가 눈 앞에 와 있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그릇된 역사적 전통의식 때문에 소위 미결구금과 형벌의 구별조차 못하고 있다. 법에 어긋나는 인신구속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인권유린행위이며 재판이나 수사과정에서의 신체구속이란 결코 형벌이 아니라는 원초적 인권의식만이라도 굳게 다져지는 사회가 되어야 민주주의도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변호사·한국법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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