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 대리인·항해사·기관사까지 “성파괴”/모양갖추기 차원아닌 잠재능력 적극적 활용재계와 금융계에 「성파괴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올초 증권거래소에서는 40년만에 처음으로 2명의 여성 시장대리인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삼성증권의 최옥정씨(24)와 ING베어링증권의 서연준씨(25). 거래소에 상주하면서 소속증권사의 매수 매도주문을 전달하고 시황정보를 본사에 보고하는 시장대리인이 여성에게 특별히 힘든 일은 아니지만 관행상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웃 일본역시 불허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여성 3명을 항해사와 기관사로 채용했다. 회사측은 선박에 여성을 승선시키지 않은 것이 관례였으나 최근 선원가족을 선박에 동승시키면서 벽이 허물어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쌍용투자증권은 작년12월 일선지점에서 10여년 영업경험이 있는 김광순차장(36)을 업계 최초로 지점장에 임명했고, 동서증권도 이주리씨(25)를 업계 첫 채권브로커로 등용시켰다. 이씨의 한달 거래실적은 2,000억원으로 동료직원에 비해 뒤지지않았다. 국민은행은 이진호씨(43)를 사내 첫 출장소장에 발탁했다. 펀드매니저와 증시분석가로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여성의 수도 늘고 있다.
이처럼 재계와 금융권이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은 「모양갖추기」 차원이 아니라 능력있는 여성을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의 주체로 급부상,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실정에서 이들을 무한경쟁시대의 돌파구로 삼아 보자는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회장은 작년 『상품의 구매권을 여성들이 갖고 있는데 우리의 기업활동은 지나치게 남성위주로 돼 있다』고 지적했었다.
여성의 잠재능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93년부터. 가전 자동차 건설 광고업종에서 여성 고객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조사 마케팅전개 등을 위한 여성기획팀이 등장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뉴터치팀, LG전자의 특A팀 삼성건설의 인테리어설계팀 제일기획의 최인아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섬세함은 고객을 사로잡는 각종 히트작을 쏟아냈고, 판매량도 늘렸다. 서울은행은 93년 11월 서울 개포동출장소를 청원경찰을 제외하고는 여성직원들로만 운영,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과감한 성차별철폐와 신인사제도가 도입됐다. 여기에는 정부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기업들에 남녀차별조항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삼성 현대 LG 금호 기아 두산 미원 아남그룹 등은 여성전문직제 도입을 통한 여성공채사원의 확대, 영업직이나 해외장기근무 등 남성과 차별없는 현장배치, 능력중심의 채용과 여성승진기회의 확대 등 남자들을 기죽게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잠재능력을 개발, 경영에 활용하는 단계에서 채용 승진 급여 직종 등 제도상의 각종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한 단계 진전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여성임원들이 늘었고 장기 해외주재원을 여성으로 파견한 곳도 생겼다.
『최초보다는 최고이고 싶다』는 여성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이제는 경영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성파괴경영」이 우리 경제전반에 깊숙이 자리잡은 것이다.<정희경기자>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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