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개 고교 철학경연대회·전시회·세미나 등 계획/인간적 면모 흥미롭게 재조명서적등 잇단 출간「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서양근대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탄생 40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프랑스에서 다양하게 열린다. 프랑스 중부 투렌주의 라에에서 태어난 데카르트의 탄생일(3월31일)을 한 달여 앞두고 프랑스 각 대학과 박물관 여러 도시가 전시회, 세미나, 학술회의등을 계획하고 있다.
근대 철학과 과학의 방법을 구축했고, 유럽을 주유하며 학문을 연구했던 그의 행적은 철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은 유럽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67년부터 데카르트를 기념해 「라에 데카르트」라 이름 붙인 그의 출생마을에서는 그 지역 48개 고교의 철학경연대회등 대중성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여러 행사를 마련했다.
소르본대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학기를 선포하고 데카르트 관련 강의, 학기 끝에 열릴 음악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출판업자들도 데카르트에 관한 여러 책을 낼 계획이다.
그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학자들의 평가 속에서도 출판업자들은 전기를 위주로 데카르트의 여러 면모를 발굴하는 것이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92년 출간돼 아직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노르웨이 소설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철학소설 「소피의 세계」가 낳은 공전의 히트를 염두에 둔 계산이다.
최근 소르본대 로디 루이스교수가 펴낸 데카르트 전기는 사생활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 그의 인간적 면모를 흥미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루이스교수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그의 시종을 가르쳐 일급 수학자로 만들었고, 제화공을 천문학자로 양성했다.
또 대부분 라틴어로 저술을 발표하던 당시 관행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프랑스어로 글을 남겼던 것을 루이스교수는 관대함과 민주적인 태도로 해석했다.
데카르트는 어려서 학교에 늦게 와도 좋다는 승낙을 얻고, 주로 침대에 누운 채 책 읽기와 사색을 했을 정도로 건강이 나빴다. 만년에 스웨덴 크리스티나여왕의 초청으로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북국에 갔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철학에서 이성의 우위를 강조한 그는 숨진 뒤 아이러니컬하게도 「온전한 이성을 갖추기 전」의 아이들이 묻히는 스톡홀름묘지에 안장됐다가 1819년 프랑스로 옮겨져 왔다. 그의 두개골은 흠모자들이 훔쳐가는등 수차례 수난을 겪다 몸체보다 늦게 프랑스로 옮겨지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그는 1628년부터 네덜란드에 머물며 「세계론」 「성찰」 「방법서설」 「철학의 원리」 「정념론」등 역작을 써냈다.<김범수기자>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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