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의 밑바탕엔 민족주의의 한/11세때 부모잃은 떠돌이 신세 거둬주고 유학보낸 동학도는 소설속 새세상 꿈꾼 「박진사」/「직접적 계몽주의」의 범주에서 신구세대 모두 아우르는 언문일치의 새문체도 동원/주인공은 바로 작가 자신… 망국조선청년의 「고아의식」 일치객:흔히 장편 「무정」이 춘원 이광수에 있어서 기념비적이지만 우리 근대소설사에 있어서도 그러하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선생도 이 점에 동의합니까?
주:「기념비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려우나 대체로 동의합니다. 만일 그 말이 「운명적」인 것에 가까운 표현이라면.
객:뭔가 명쾌하지 않군요. 가령 「무정」이 작가에겐 운명적이지만, 소설사에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뜻입니까. 1차 자료에 의거, 이광수에 대한 평전을 쓴 바 있는 선생인 만큼, 이광수의 개인사에 비추어 보면 운명적이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군요.
주:소설사의 과제는 늘 열려 있기에 단정적 표현은 피하는 편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객:「무정」의 발표지는 매일신보. 대한매일신보를 조선총독부가 매입한 것. 당시로는 우리 말로 된 국내 유일의 큰 신문. 1917년 1월1일에서 6월14일까지 126회에 걸쳐 연재된 것. 이때 이광수는 몇 살이었습니까?
주:26세. 그는 와세다대학 철학과 1학년 1학기 재학중이었지요. 그는 이미 외배라든가 고주 등의 필명으로 육당의 「소년」, 「청춘」 등에 소설을 썼고 한편 매일신보에 논객으로 명성이 높았지요. 따라서 독자들의 기대도 대단한 상태였지요. 「오도답파기」 「대구에서」 「농촌개발」 등의 대연재물이 매일신보를 장식한 바 있었던 만큼 그가 쓴 「무정」은 그러한 논설과 같은 반열에 놓였던 것입니다.
객:총독부 기관지이며 유일한 우리말 큰 신문인 매일신보(오늘의 서울신문 전신)인데다 정사년 첫 날에, 그것도 이왕직장관과 사법부장관 휘호와 나란히 제1면(정치면)에 「무정」이 실렸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는 뜻이군요.
주:신문 제1면에 소설 「무정」을 연재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요.
객:잠깐, 126회로 완결되었다면 반년에 지나지 않는데, 「무정」은 거의 400면이 넘는 장편 아닙니까.
주:1회분이 오늘날의 신문연재소설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이니까. 그만큼 연재 당초부터 압도적이었음이 드러납니다.
「미스터 리」 「엔게지멘트」뿐 아니라 「히사시가미(유행하던 여자의 머리모양)」를 비롯 「오메데또(축하한다)」, 「이이나즈게」, 「이야시꾸모(적어도)」 등의 외국어가 그대로 들어 있지 않습니까.
주:서양말, 일본어가 거의 동격으로 등장한다는 것, 그만큼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 주목할 것은 「무정」의 첫 줄입니다.
이 첫 줄에서 보듯 학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객:행정제도, 철도제도와 더불어 비롯된 신식 교육제도가 그동안 길러낸 새로운 지식층이 독자로 상정된 것이군요. 적어도 신식 교육 받은 방대한 독자층이 형성되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니까. 그런데 참 알기 어려운 것이 「무정」의 문체인데….
주:알겠습니다. 제1회분에서도 잘 드러나듯 순우리말로 씌어졌다는 점. 등장인물인 신문기자 신우선(심훈의 맏형 천봉 심우섭을 모델로 한 것) 외에는 전부 우리말 아닙니까.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에서조차 국한혼용체로 되어 있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무정」의 문체는 놀라운 것이지요. 여주인공 김선형을 두고 「그가 유명한 미인이라데」라고 해놓고 있습니까. she, he 구별없이 「그」라고 한 것이지요. 한편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라」라는 구식 표현도 끼여 있지요.
객:춘원이 우리말 사용에 매우 큰 관심을 가졌다는 점. 이른바 육당과 더불어 시문체의 창달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는 것. 아마도 언문일치에 대한 자각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주:….
객:그렇다면 「무정」보다 훨씬 뒤에 나온 김동인의 「약한자의 슬픔」(1919)이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거기엔 국한혼용체로 일관되어 있고 심지어 「피」라는 일본어 대명사까지 태연히도 씌어지고 있지 않았던가.
주:날카로운 질문이군요. 이런 자리에서 간단히 설명하기란 힘들겠네요. 이렇게 비유해 보면 어떨까. 춘원이 직접적인 계몽주의 범주에 섰다면 염상섭이나 김동인은 간접적 계몽주의 범주에 섰던 것이라고.
객:간접적 계몽주의란 그러니까 김동인이 말하는 「참예술」, 탈계몽주의적인 본격적 소설이겠군요.
주:김동인이 말하는 참예술이란 곧 시점(point of view)의 도입에 관련된 것이며 염상섭에 있어서 본격소설이란 내면의 탐구(고백체의 발견)에 각각 해당되는 것이지요.
객:조금 짐작이 갑니다. 「무정」의 경우가 대중성을 겨냥한 것이라면 동인이나 횡보는 소설 특유의 전문영역을 겨냥한 것. 이 두 가지 흐름(범주)이 우리 근대소설의 뼈대라는 것. 그렇다면 「무정」의 대중성은 무엇인가.
주:「무정」의 내용부터 볼까요. 6월28일에서 시작되어 7월말까지, 그러니까 약 한달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다룬 것이 「무정」이지요. 주요인물은 이형식, 박영채, 김선형, 김병욱, 신우선 등 5명. 이중 주인공은 이형식을 정점에 둔 박영채, 김선형.
객:박영채가 구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김장로의 딸이자 정신여학교를 나와 미국유학을 꿈꾸는 김선형은 신식여성.
주:신구세대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문체가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외국어를 멋지게 사용하는 신식 독자층과, 순우리말에 익숙한 구세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식, 이것이 계몽의 직접성이었던 것.
객:이른바 신구세대의 갈등이 소설의 긴장감을 유발했을 터인데, 그 갈등의 극복이 문제였겠지요. 소설은 아무리 대단해도 결말을 내야 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인생과 다른 점이니까.
주:「춘원연구」(1938)에서 김동인이 적절히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그것. 이형식과 김선형이 약혼하고 미국유학을 떠나기 위해 경부선을 탔지 않습니까. 한편 친일파에 겁탈당한, 이형식의 약혼자 박영채가 자살하기 위해 대동강으로 가는 도중 김병욱을 만나 구제되고 또 함께 일본유학 가느라고 경부선을 탔지 않았겠는가. 같은 차에서 네 사람이 만났지요. 이 어색한 장면을 극복하는 「무정」의 결말은 기념비적이라 부를만합니다. 삼랑진 수해사건으로 기차가 불통되자 형식이 나서서 그 원인과 대책(민족주의)을 부르짖고 세 처녀들이 모두 동참한다는 것, 거기에 신우선까지 합세한다는 것이지요.
객:개인의 사소한 감정을 뛰어 넘어 나라를 의식하고 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주:국권상실 이후 약 7년간에 모색된 역사의 방향성, 곧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 이것을 문제삼은 것이 「무정」의 주제상의 강점이 아닐까.
객:「무정」이 당시의 베스트셀러였을 뿐 아니라 그 뒤에도 제일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까닭은?
주:대중성이 아닐까요. 정삼각형 연애소설이라는 점. 처녀작 「사랑인가」(1909, 일어로 쓴 것)에서 「흙」(1932)에 이르기까지도 같은 구조. 여기에는 또 설명이 없을 수 없는데, 남주인공이 고아라는 점. 이광수소설의 기본선으로 작동하는 이 고아(이형식, 허숭 등)가 재색겸비한 신식여자와 정절 깊은 구식 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결국 전자쪽을 택하지요. 이처럼 흥미로운 것이 따로 있을까. 국권상실기에 있어 조선청년이란 알게 모르게 고아의식에 함몰되어 있지 않았을까. 임이 침묵하는 시대, 이처럼 절실한 것이 따로 있었을까.
객:아 이제 알겠다. 선생이 앞에서 한 말을. 「무정」이 왜 「운명적」인가를. 이광수, 그는 고아였던 것.
주:1892년 이광수가 태어난 곳은 평북 정주군의 어느 한촌. 한미한 집안의 장남. 아명은 보경. 누이동생이 둘. 11살때 부모 별세. 둘째 누이도 사망. 고아가 되어, 동가식 서가숙의 신세. 담배장사도 하고 나무도 하여 연명.
객:그러한 고아소년을 구출해 준 것이 동학교도였다….
주:맞습니다. 양지쪽에 쭈그리고 앉아 이[슬]를 잡고 있는 이 소년을 구출하여 가족처럼 돌보며 글을 가르치고 사람대접[인내천]을 해준 이가 누구였던가. 유년기를 회고하는 여러 글에서 이광수는 그 이름까지 밝혀 놓았지요. 바로 박찬명대령.
객:실명입니까.
주:그렇소. 천도교측 자료집에도 나오는 인물이지요. 동학의 도움으로 이광수는 제1차 일본유학에 나아갈 수 있었지요(2차 유학은 김성수의 도움).
객:그렇다면 「무정」에 나오는 박영채의 부친 박진사가 바로….
주:맞습니다. 당초 「무정」은 「박영채전」이었던 것. 인간다운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하다가 누명을 쓰고 옥사한 그 박진사가 거두어준 고아소년이 바로 이형식이 아니었던가. 그 박진사가 맺어준 약혼자가 바로 박진사의 딸 영채가 아니었던가. 그 정결한 딸이 기생이 되고, 친일파이자 경성학교 교주 아들 김현수에게 겁탈당하지 않았겠는가.
객:「무정」의 밑그림엔 그런 한이 서려 있었군요.<김윤식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김윤식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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