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때 「희로애락 교차성」 되새기면 희망냉정 회복언젠가 지방유지들이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시짓기 모임을 가졌는데 한 법조인의 차례가 오자 겨우 지어 내놓은 시가 「저 달은 소유권의 객체가 될 수 없으며 누구나 마음대로 쳐다 볼 자유가 있다」는 것이어서 실소를 금치 못한 일이 있었다 한다. 내가 소개한 시가 낭만적이지 못하여 시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평한다 해도 감수하겠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만물은 정지상태라는 정태적 세계관과 끊임없이 변동한다는 동태적 세계관이 대립되어 있었다. 영국의 천재서정시인이요 아깝게도 요절한 셸리는 이 시를 통해 동태적 세계관을 극명하게 표현했다 하겠다. 세상만물은 어느 것이나 정지해 있는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듣기에는 우주도 대폭발(BIG BANG)로부터 시작하여 계속 팽창해 가고 있으며 우주공간에 퍼져 있는 물질들이 합쳐져 별이 생성되고 또 끊임없이 진화해 간다고 한다. 자연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간생활도 변화무쌍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변화하는 영겁 속의 한 순간이요 거품과도 같이 생겼다 사라지는 찰나적 존재에 불과하다. 흥진비래 고진감래이고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비록 짧은 시이지만 이 시를 읽으면 일련의 세상사를 매우 실감나게 한다.
인간세계에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교차되기 마련이다. 어느 하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를 암송하면 비록 기쁠 때가 있어도 이는 한 순간이며 오래지 않아 사정은 변화하고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치솟는 환희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게 한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슬프고 노엽거나 회한과 번뇌가 있다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한 순간일 뿐이라 자위하게 된다. 때문에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되고 이를 참아나갈 용기를 얻는다. 한편 부귀영화도 한 때의 일이니 지나치게 선망과 관심을 가질 것도 없고 연연하고 미련을 가질 일만도 아닐지 모른다. 천함, 가난 그리고 실패도 항상 그 자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므로 영원히 멸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며 실의와 좌절에만 빠질 일도 아니다.
풍진세상에 다소나마 초연하고 달관할 수 있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이 시는 누구나 닥치게 될 사멸 앞에서도 이를 피할 수 없는 변화의 한 과정으로 보고 다소 의연해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다만 부수하여 영원은 없고 제행무상을 강조하는 허무주의로 전락할 요소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분명 인생은 사막의 발자국에 불과하며 끊임없는 사막의 회오리에 의하여 곧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허무한 것이라고 본 노자의 생각과 이 시가 일맥상통하는 바도 없지 않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에서 이 시에 함축된 천리를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찰나에 생겼다 사라지는 사막의 발자국일지라도 회오리바람이 올 때까지의 잠시동안은 길 잃은 사막나그네의 길잡이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무의미하고 허망하다고만 단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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