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 비리관련 기업인 9명에게 1∼4년의 실형이 구형되었다. 검찰은 이들이 노씨에게 건넨 돈중 2천8백억원을 분명한 뇌물로 인정, 5년의 법정형에 가까운 실형을 구형하기에 이른 것이다.29일의 결심공판에서 우리나라 대표재벌총수들이 망라된 이들 기업인들은 변호인 증인신문 등을 통해 노씨에게 건넨 돈이 뇌물이 아니라 관례적인 정치자금이나 성금이라고 거듭 주장한 바 있어 앞으로의 사법부 판단이 주목된다. 사법부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노씨 비리의 공범으로 이들 재벌총수들에게 실형을 선고할 경우 그 의미와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사실은 이번 검찰의 재벌총수들에 대한 실형구형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와 상징성은 대단하다 하겠다. 일찍이 우리 검찰이 이처럼 많은 재벌총수들을 한꺼번에 실형구형으로 단죄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 노씨의 비리혐의 구속이 국치였듯 우리 경제를 이만큼 끌어올리는데 기여해온 재벌총수들의 집단적 실형구형 역시 경제 대국으로 달리고 있는 한국의 또다른 부끄러움이요 아픔이라 할 것이다.
모처럼의 강력한 단죄의지와 이같은 국가적 아픔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교훈으로 승화시키는 길은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의 그 끈질긴 족쇄를 확실히 깨뜨리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적 합의요, 역사 바로세우기의 핵심이며, 우리 경제계가 생산성을 높이면서 명예도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전직 대통령에게 준 돈이 뇌물이냐 아니냐하는 법리적 논쟁이나 지나칠 정도의 항변은 그리 큰 의미도 설득력도 없다 하겠다. 지난 시절 헐벗은 나라를 이만큼 잘 살게 헌신한 선구자이면서 나라를 그렇게 타락시킨 공범이라는 재벌들의 곤혹스런 두 얼굴이 우리 모두의 또다른 거울이기도 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엄정한 단죄없이 정경유착의 단절은 불가능하다. 이같은 국민적 여망을 재계는 오히려 진지한 반성과 거듭날 각오로 겸허히 수용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5·6공 수사과정에서 우리 정치권과 검찰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이유로 관대한 자세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자금제공 30대 재벌총수 중 9명만을 검찰은 불구속 등으로 기소했었고 정치적으로도 결심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오는 31일의 청와대와 30대 재벌총수회동을 화해의 신호인양 미리 밝히기도 했던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재계는 이런 국가적 배려에 보답하는 합당한 자구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 궁극적 해답은 역시 정경유착의 단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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