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나의 두발로 처음 밟았을 때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중요한 생활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세계에 선택 받았다는 느낌과 기쁨,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걱정이 엇갈렸다.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남한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북한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극과 극을 오가는 참으로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했다.
태어나서 24년간 한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믿음 및 신뢰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남한 생활은 낯설고 무섭게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소박한 꿈 하나를 가지고 서울에 왔다. 다름 아닌 자유와 행복을 찾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이겠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 6년간 군사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나에게는 큰 목표였다.
내가 고향에서 충성을 바쳐온 것은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였다. 고향에서는 감히 자유와 행복을 찾겠다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서울에 와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처음 접하고는 고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남한은 자유와 행복이 가득찼고 경제성장은 풍요를 가져다 놓았다. 내가 북에서 보고 듣고 배워왔던 모든 것들, 정말 24년간 겪었던 아픔과 고뇌가 말끔히 사라져 버리는것 같았다.
나는 꿈에 부풀고 만족감에 젖어 있다. 남한에서 나의 목표를 실현 시켜보겠다는 굳은 신념과 각오속에서 새로운 나날을 맞기에 여념이 없다. 나의 고향은 낡은 정치, 오래된 문화 그리고 군사교육이 반복되는 따분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남한은 모든 것이 날로 발전하고 새로워지고 있고 눈부시게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 알지 못하던 서울생활을 하나 하나 접하면서 안타깝고 아쉬울 때가 많다. 서울생활 1년을 채 넘기지 않아 남한과 남한의 정치 경제등 이곳저곳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이하면서 나에게는 많은 아픔과 갈등, 그리고 번민이 생겼다.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며 비난하고 차별화 해 있는게 우선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 같다.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살아왔던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험난한 길을 택했다. 나는 남한 사회를 바로 알고 깨닫기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모두가 「귀순자」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나를 외면하는 것만 같다. 고향의 부모 형제를 다 버리고 자유와 행복을 찾아왔는데 「귀순자」라는 말한마디에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기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북에서 왔으니까…』라고 꼬리표를 다는 경우도 많다.
자유를 찾아온 귀순자, 어렵고 소외된 우리들에게 따뜻한 정과 사랑, 관심을 준다면 우리들이 떳떳한 한국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약력
▲71년 평양시 출생
▲87년 평남 덕천시 덕천 남자 고등중학교 졸업
▲89년 평남 덕천시 군사 물리전문학교 졸업
▲조선인민군 6년 근무
▲94년 11월 북한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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