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열렸던 한국·미국·일본 등 3국 고위정책협의회는 그동안 대북한 정책에 있어 협력을 다짐했음에도 제각각이었던 입장을 조율, 일련의 공조원칙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회담후 3국이 공동발표문을 통해 최근 북한의 식량부족이 체제위기의 수준은 아니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당분간 정부차원의 대규모 식량지원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한국측의 「선결 조건의 이행입장」을 수용한 셈이다.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회의를 통해 한미간에 북한의 현상을 보는 시각에 차이를 드러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미국은 식량난이 심각한 수준이고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들에게 타격을 줄 것을 우려, 인도적 차원에서 조건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국은 자료를 통해 작년 가을의 추수 등으로 앞으로 9개월 정도 소비에 큰 문제가 없으며 북한이 식량난을 이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경우 사전현지실태조사와 배급과정의 입회·확인 등 식량사용의 투명성보장을 제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북한이 문을 닫은채, 또 일체의 정확한 농업생산과 수요관계자료등을 제시하지 않은채 도움을 호소한다고 무턱대고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귀순한 인민군1군단소속 하사 최광혁씨의 증언대로 작년 남한이 제공한 쌀의 일부를 군량미로 사용한 데는 아연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민군의 유지와 전력증강을 지원한 셈이 된 것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연초이래 북한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또 제네바 북·미핵합의를 파기하지 않도록 식량을 지원할 방침을 세운 미국에 대해 일단 제동을 건 것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동과 3국공조원칙에도 불구하고 우리측에 몇가지 딜레마가 있음을 정부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같은 동족인 우리가 언제까지 쌀지원을 외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 세 나라가 민간기구, 국제기구, 비정부간기구 및 종교단체 등에 의한 지원은 투명성보장을 조건으로 양해키로 했지만 과연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끝으로 미국 등이 북한돕기를 위해 민간 및 국제기구를 통해 일방적으로 지원할 경우 견제의 길이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아무튼 3국간의 대북쌀지원 선행원칙을 설정한 만큼 정부는 미일 양국이 대북정책에 있어 이 원칙은 반드시 준수하도록 대화와 협력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쌀지원에 관한 한 남북대화를 반드시 선결하되 민간기구 등의 지원에는 신축성있는 협조적 자세를 보이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미국은 대통령선거,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를 위해 독자적인 대북접근의 가능성이 큰 만큼 공조원칙 준수에 각별한 외교노력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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