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정기 맺힌 사자봉 토말비/해발 122m 불구 맑은 날엔 한라산까지 보여우리나라 행정상 땅끝은 제주도 마라도다. 한반도 육지 끝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가 된다. 국토 등뼈를 이룬 백두대간이 태백과 소백의 준령을 번갈아 타고 내려가 남해의 푸른물살 아래 거침없이 숨결을 토해 놓는데 그곳이 이 땅의 마지막 봉우리인 땅끝 사자봉이다. 해발 122m의 높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 봉우리는 마치 갈기를 휘날리며 우뚝 멈추어 선 사자처럼 당당한 기운을 뿜어낸다.
「태초에 땅이 생성되었고 인류가 발생하였으며 한겨례가 국토를 그어 국가를 세웠으니 맨위가 백두산이요 맨아래가 이 사자봉이니라…」이땅의 나그네라면 땅끝을 알리는 토말비 앞에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국토가 반으로 나뉘어 그 맨위가 되는 백두산은 오를 수 없으니 오늘 땅끝을 오르는 의미는 더 간절해 질 수 밖에 없다. 해풍에 씻긴 곰솔나무 숲을 가파르게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 섬들은 마치 꽃잎처럼 둥둥 떠있다. 청명한 날이면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눈에 들어온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땅끝을 떠올리는 것은 이땅이 그만큼 매력을 지닌 탓이다.
그러나 갈두리 사자봉 꼭대기의 봉화대는 이곳이 피흘리며 지켜 낸 옛어버이들의 싸움터였음을 기억하라 한다.
사자봉과 불과 시오리 안팎에 위치해 있는 어란진성과 달량진성, 이진성터가 16세기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전초전이었던 1555년 을묘왜변때 왜구들은 70여척의 배로 달량진에 상륙하여 병사 원적을 살해하고 서남해안의 성들을 약탈했다. 심지어 전라도 육군 최고 지휘부가 있었던 강진의 병영성까지 함락시켰다. 왜구들의 노략질로 유린당하던 누란의 세월, 땅끝 사람들은 숨가쁘게 봉화불을 피워 올리며 역사의 암운에 맞서 온몸으로 싸웠다. 그것은 43년후 울돌목에서 거둔 명랑대첩의 서곡이기도했다.
남창의 이진성은 을묘왜변후 해안방비의 중요성이 부각돼 축성된 성이다. 성안에 지금도 민가가 자리잡고 있고 성문과 옹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진도 남도진성이나 승주 낙안읍성에 비교해도 손색이없다. 반쯤 허물어져가는 성터에는 해송들이 우거져 있어 옛성터를 거닐다보면 나그네의 여수는 더욱 깊어만 간다.
가는길은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광주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종합터미널에서 땅끝 가는 버스를 탄다.(하루 20회)<이형권역사기행가>이형권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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