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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땀」의 신선한 충격/정태영(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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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땀」의 신선한 충격/정태영(한국논단)

입력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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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가 다 저물어 가던 12월의 어느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3시간씩 교통방송에 출연하고 얼마간의 사례비를 받았다. 애초부터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들과 학부모를 염두에 두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학교를 널리 알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한 것이었기에 액수가 많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 사례비를 온라인으로 보내 준다고 하는데 왠지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나름대로 머리를 짜낸 것이 그 방송 중간에 초대손님으로 나왔던 민간자원봉사단에 사례비 전액을 희사하기로 작정하고 그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민간자원봉사단은 지난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났을 때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기술로 조금이라도 돕겠다는 생각으로 모여 비지땀을 쏟던 자원봉사자들이 그 후에도 계속 정기적으로 모여서 봉사하고 있는 자원봉사단체였다. 혼자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자비로 연탄보일러도 설치해 드리고 아궁이도 고쳐 드리고, 도배도 해드리는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이들의 하는 일에 미약하나마 간접적으로라도 돕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봉사단 반응 뜻밖

이러한 선의의 제의에 대해 민간자원봉사단쪽에서 온 반응은 호의는 감사하지만 돈은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절의 이유인즉 지금까지 형편이 넉넉한 처지는 못 되지만, 회원들의 회비로 자원봉사를 해왔는데, 만일 이 돈을 받게 되면 남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기대심리가 생길까 심히 염려되기 때문에 부족하더라도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선의의 제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섭섭하기는 하였지만, 그보다는 이름도 없이, 또 드러내고자 함도 없이, 또 실적을 올리겠다는 욕심도 없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 각박한 세상에도 있다는 데서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며칠전 텔레비전을 통해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맛보았다. 추운 겨울날,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 쓰러져 있는 무의탁노인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청량리 588번지를 고향으로 삼아 행려병자, 588의 여인들, 외로운 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 한 젊은 목사 때문이었다.

돈 없어 병원에 갈 엄두도 못내는 가난하고 냄새나는 이웃을 위한 무료병원을 세울 꿈을 가지고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이 무료병원의 이름을 「천사의 집」이라고 미리 이름까지 지어놓고 1,004(천사)명의 회원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인 것을 감지할 수 있는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100만원 이상의 후원금은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인즉, 특정한 몇 사람의 뭉칫돈보다는 십시일반으로 많은 사람의 정성과 사랑과 눈물이 배어 있는 돈이 더 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하기에 어느 대기업에서 몇 억원을 주겠다고 하는 것도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몇 억원인가의 뭉칫돈을 거절할 수 있는 그 가난한 마음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부유한가를 느낄 수 있었기에 나의 마음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이왕 지을 것 빨리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왜 안들었겠는가만은 그 명분 좋은 유혹(?)을 단호히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보통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억제의도 거절

사실상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눈 감으면 코 베어갈 만큼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인 듯 싶기만 한 것이 요즈음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보인다. 온갖 소문들이 무성하게 돌고 돌아도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아니 제발 호사가들의 입방아뿐이었음이 밝혀지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것들이 하나 하나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5,000억원 비자금소식에 호떡집에 불난 듯이 놀란 순진한 백성들이 이제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5,000억원의 두 배가 되는 비자금소식이 들려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입 다물어 버리고 만 것이 요즈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최고의 지도자였던 두 분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또 노름빚을 갚으려고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인질로 잡고 흥정을 벌이다가 잡힌 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몹쓸 세상이라고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고 냉소적으로 삐딱하게 세상을 강건너 불 보듯이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세상이 이대로 가다가는 금방 망해버릴 것 같은데도 이만큼 유지가 되는 것은 바로 삶의 현장에서 건강한 땀을 흘리는 이름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있고, 세상의 일상적인 통념을 깨고 신선한 충격을 조용히 주윗사람들에게 던지고 있는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실감나게 눈 앞의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면서, 동시에 건강한 땀을 흘리는 사람들, 실적쌓고 과시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동기와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서울여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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