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집권 시나리오」 실재 확인/지휘 2원화 등 발포경위 규명/언론 통폐합 불법폭거도 판명/최전대통령 하야배경·사망자수 등은 아직도 미제로12·12 및 5·18사건특별수사본부는 23일 50여일간에 걸친 재수사를 마무리하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검찰의 재수사에서 신군부 집권시나리오의 실재와 광주 계엄군 지휘체계 이원화, 발포명령자를 확인한 것등은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검찰은 재수사에서 우선 광주 계엄군의 실질적인 지휘자 및 발포명령자가 전두환보안사령관등 신군부 세력이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공수부대병력을 투입하고 이들의 자위권 발동을 승인한 행위는 사실상의 「발포명령」이며 실제로 당시 현장지휘관들 대부분은 80년 5월21일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 결정을 「발포해도 무방하다는 취지의 명령」으로 인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희성계엄사령관이 자신의 판단보다 전씨-정호용특전사령관의 판단과 명령에 의해 광주시위진압을 지휘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신군부의 의도대로 작전이 이루어졌다고 확인했다. 전씨는 5월18일 광주지역 병력증원 및 시위 조속 진압을 이계엄사령관에게 「지시」했고 유혈진압이 한창이던 5월23일에는 『공수부대의 사기를 고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사태를 조기 수습해 달라』는 내용의 메모를 정씨를 통해 소준렬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광주유혈진압에 정호용특전사령관과 황영시육참차장도 개입됐음을 밝혀냈다. 정씨는 5월25일 전씨등이 수립한 「상무충정계획」에 따라 소씨에게 광주 재진입시 공격지점별 공수여단 특공조를 직접 지정해 주었으며 이보다 앞선 5월19일에는 전교사 기밀실에서 상황을 보고받고 공수여단장들과 대책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황씨가 전교사에 헬기와 전차를 동원한 강경 진압을 지시하는 등 유혈진압을 조장한 사실도 새롭게 규명됐다.
검찰은 80년 5월초 보안사 권정달정보처장 이학봉대공처장 정도영보안처장 허화평비서실장 허삼수인사처장등을 주축으로 입안된 「시국수습방안」이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에 해당된다고 규정했다.
언론통폐합이 집권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자행된 불법적 조치였음을 확인한 것도 재수사의 중요한 성과이다. 권정달정보처장 이상재언론대책반장등 보안사팀과 허문도씨등 신군부 가담 민간인들이 집권후 비난여론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자행한 폭거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특히 허문도씨가 80년 6월 언론통폐합 언론인숙정 언론관계법제정등을 골자로 한 「언론계의 정화·정비계획」을 전씨에게 보고한 점은 새로 규명된 사실이다.
검찰의 5·18 재수사는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 5·18 광주 유혈진압등 각론 부분에서는 여전히 미진한 구석을 남겨놓고 있다. 우선 최규하전대통령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80년 8월16일 하야성명 발표시 신군부의 강압여부등을 규명하지 못했으며 광주유혈진압과 관련해 정확한 사망자수나 양민학살 및 추가 암매장, 헬기 기총소사 여부등을 추가확인치 못했다. 또 5·18이후 신군부측이 발표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진상도 역사의 뒤안에 묻히게 됐다.<황상진기자>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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