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관련 사법적 심판이 16년만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제야 그 과정을 보게 되는 역사적 감회가 새롭다. 검찰은 23일 공소권없음결정을 내리는등 우여곡절 끝에 재수사착수 50일만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을 군사반란·수뢰혐의에 이어 내란혐의로 세번째로 추가기소하는 등 8명을 함께 기소한 것이다.이같은 사법 판단의 개시는 역사적·정치적으로만 따져봐도 뜻깊다. 검찰은 신군부에 의해 취해진 지난 80년의 광주유혈참극에 이르는 일련의 조치가 사전에 계획된 정권탈취를 위한 내란행위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이제 그 죄를 가리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적인 범죄는 오랜 시일이 비록 흘렀을지언정 반드시 처벌된다는 선례도 남겼다.
이와 아울러 광주피해자들을 「민주화투쟁을 위한 의협심이 강한 시민들」로 규정,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구체적 과정을 사법적인 수사관점에서 따져볼 때 미심쩍고 아쉬운 점이 몇가지 지적되고 있는건 유감스럽고, 이런 점들이 앞으로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거리라 하겠다.
가장 먼저 지적될 것은 공소시효에 쫓긴 탓인지 12·12에서 5·18에 이르는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내란죄명목으로 연결지어 놓는데는 성공했으나 구체적인 범죄사실이라 할 12·12와 5·18사건의 긴밀한 연관성을 구체입증하는데 미흡한 것은 아쉬움의 하나다.
실제로 검찰이 12·12와 5·18관련자를 수사했으나 12·12사건 관련 위헌제청신청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는데 실패한 장세동·최세창씨등의 경우는 그 구체적인 예이고, 앞으로의 재판과정에서 시효문제로 인한 위헌시비와 함께 법리상으로도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광주참극의 발포명령 및 유혈진압지휘책임자를 구체적으로 가려내지 못한 채 포괄적 책임을 전씨에게 물어 내란수괴 및 내란목적 살인혐의로 기소한 것도 또 다른 아쉬움의 하나라 하겠다.
또한 이 문제와 아울러 당시 시위진압 참여혐의로 고발된 일선지휘관 27명에 대해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군조직의 생리나 군의 사기 때문임을 이해할 만하나 고소고발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음도 사실인 것이다. 이들 외에 고발된 국보위 위원·각료등을 제외한 것을 놓고서도 검찰이 정치논리에 따라 인위적으로 기소범위를 조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없지도 않은 것이다.
이제 5·18의 심판은 검찰기소와 함께 사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뜻깊은 역사 바로세우기일수록 사법적 처리와 판단에 조그만 허술함이 없도록 철저히 하는게 그 뜻을 살리는 길일 것이다. 그런 빈틈없는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5·18의 멍에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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