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아라파트 기치로 의원 당선/「팔」대변인 출신… 기독교인·여성 한계극복이번 팔레스타인 자치평의회 선거는 「1남2여의 선거」였다. 이들 「1남2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과 행정수반(대통령)선거에서 그와 맞붙은 사미아 카릴여사, 그리고 91년에서 93년까지 중동평화회담에서 팔레스타인의 「입」으로 맹활약하던 하난 아슈라위여사(49)이다. 93년 아라파트를 격렬히 비난하며 그의 곁을 떠났던 아슈라위는 친아라파트 인사가 의석의 대부분을 휩쓴 이번 선거에서 반아라파트 기치를 내걸고 당당히 의원에 당선됐다.
88명의원 중 1명에 불과한 아슈라위에게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라파트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협상팀 대변인시절 정확한 분석력과 능란한 화술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당선직후 아라파트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새로 구성된 의회가 용기를 갖고 단합하여 진정한 의미의 의회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아슈라위가 아라파트를 독선적인 지도자로 규정한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팔레스타인 대변인으로 활약하면서 지켜본 아라파트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독재자에 불과했다는 것. 그는 아라파트가 당시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는 기사를 쓰지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사를 탄압했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이스라엘과의 비밀협상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채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아슈라위는 93년 자치정부의 장관직을 제공하겠다는 아라파트에게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쏘아붙인뒤 홀로서기를 택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덕택에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아메리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버지니아대에서 영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온상인 명문 비르제이트 대학교수를 지냈다. 91년 1차중동평화회담에서 협상팀의 대변인을 맡으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는 지하조직에 가담해 투쟁했던 과거 경력덕분에 「엘리트 전사」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기독교인이자 여성이라는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있는 그의 대담한 반아라파트 노선이 남성과 회교도, 아라파트의 추종자들로 득실대는 팔레스타인 평의회에서 얼마만큼의 호응을 얻을지 주목된다.<조재우기자>조재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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